세 번째 선교 여행: 아볼로와 세례 요한의 제자들
본문: 사도행전 18장 24절-19장 20절
읽기: 사도행전 19장 8-20절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사도 바울은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바울이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고 그 도시를 떠나면, 하나님은 다른 사역자들을 세워 계속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사역자들 중에 아볼로라는 경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고 열정과 권위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볼로는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본문은 그가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이것이 아볼로의 사역에 큰 장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복음 사역자로서의 잠재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고치도록 잘 지도해 주었습니다. 27절과 28절은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사역을 할 때 그곳 형제, 자매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증거해줍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는 권능을 받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성경의 증언들을 사람들에게 잘 이해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아볼로로 하여금 삶의 특별한 변화를 경험케 했을까요? 본문은 그에 대해 제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25절은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한편, 바울은 세 번째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 도착해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을 만났는데(19:1), 그들도 아볼로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믿음을 가질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자 그들은 성령에 대해서는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볼로처럼 이 제자들도 복음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들의 선생인 세례자 요한은 이 점에 대해 분명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지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했으므로, 그의 제자들은 메시아에 대한 지식은 분명히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에서 성령을 개인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올바른 신앙을 가졌지만 아볼로처럼 권능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예수에 대해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은 마음과 삶을 주님께 드리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이 임했으며 방언과 예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아볼로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후에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령의 임재와 권능은 사람들의 삶에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아볼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설교했지만 성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지혜로 행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권능으로 일하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기름을 부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종종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아볼로와 요한의 제자들처럼 삶과 사역에서 성령의 역사를 분명히 경험해야 합니다.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 바울은 에베소의 회당으로 가서, 그곳에서 석 달 동안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한 고집 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바울의 가르침을 조롱하며 복음을 거부하자 바울은 회당을 떠나 도시의 곳곳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에베소에 2년간 머무르면서 복음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의 삶을 강하게 인도하실 때 에베소에서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적들은 아주 강력해서 바울의 몸에 닿았던 손수건과 앞치마도 병든 자를 낫게 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고, 악령들은 사람들로부터 쫓겨나갔습니다.
이런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보여주셨고, 바울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일하시는 방법에 관한 단순한 지침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성경에는 손수건으로 주님의 몸을 만졌다거나 그 손수건으로 다른 사람을 치유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하신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경우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몇 가지 규칙과 절차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행하신 것을 흉내 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말씀의 권위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돌아다니며 마술을 행하던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이 행하는 기적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도 바울의 귀신 쫓는 능력을 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해서 귀신을 쫓으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큰 적인 유대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정했지만, 자신들이 눈으로 경험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은 주님께 자신들의 삶을 헌신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주님에게 다가가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유대인 마술사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 있는 이름인 것도 알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더욱이나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까지 행했지만, 주님 앞에 경배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이 마술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주목하기 바랍니다. 15절과 16절은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있을 때 귀신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때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벌거벗은 채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은 마지막 날에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을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주님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이름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주술처럼 사용하는 마술의 형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영광과 존귀를 받을 대상입니다. 영적인 전쟁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일곱 명의 유대 마술사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에베소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17절, 사람들은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렸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악한 영의 능력보다도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스게의 일곱 아들들을 이용해 도시에서 위대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악령의 힘과 그보다 더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책들을 가져다가 불에 태웠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에베소에서 더 활발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때 불태워 버린 책의 가격이 오만 드라크마에 달했습니다. 당시 한 드라크마는 하루 일당에 해당됐기 때문에 그 가격은 한 사람이 160년간 일한 노동의 가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 사람이 일주일에 6일씩 5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그날 불태워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에서 강하게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에베소의 초기 제자들 중에 권능이 부족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과 아굴라, 그리고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확인시켜 주는 도구들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성령님의 능력을 에베소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에베소에 부흥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와 증거들로 충만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께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경배했으며,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악령에 대한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림으로써 적들에 대한 승리가 에베소에 강력하게 선포되었습니다. 아볼로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의 삶에서 시작된 증거들이 나머지 공동체 전체에 퍼져 나갔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도 그렇게 일하시길 소망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과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비교해 봅시다. 그들의 차이는 성령님께서 충만히 역사하시는가의 차이였습니다. 우리 예림교회 또한 성령님께서 충만히 역사하시길 소망합니다. 혹시 왜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에도 우리의 영성이 약하여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영적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과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에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합시다. 오늘날 예림교회에 성령님께서 충만히 역사하시길 축복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예림교회를 비롯하여 한국교회에 에베소교회와 같이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깨닫게 하시사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성령님의 능력 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교만을 회개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따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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