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397번째 이야기
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 응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공급이 근원이시며 그분이 공급의 통로로 사용되는 사람들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나 의존함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조지 뮬러는 5만 번의 기도가 응답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공통된 형상인 것입니다. "너는 지금까지 지낸 것이 나의 은혜 때문이라고 말로는 고백하면서 미래의 재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구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입니다. ![]() |
사사기 19장 2-3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하나님 앞에 구별된 레위인은 일반 백성보다 더욱 성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레위인은 첩을 두었을 뿐 아니라, 그 첩이 행음했음에도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다시 데려와 살고자 했습니다. 이는 그가 특별히 자비심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욕정에서 비롯된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욕정과 성결한 삶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죄의 길을 미워하고 타협하지 않는 것이 성도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 |
이 악물고 뛰어 봐요! 고양이는 높고 좁다란 곳에서도 흔들림 없이 잘 걷습니다. 이것은 긴 수염이 바람의 방향을 감지해서 몸의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는 덕분이라고 합니다. 수염으로 감정도 표현하는데, 뒤쪽을 향하면 두려운 상태이고 살짝 내려가 있으면 편안한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서른두 살의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청운의 꿈을 펼치기는커녕, 밀려오는 공허와 우울을 술로 달래곤 했습니다. 숙취로 맞이한 어느 날 아침, 인생을 낭비하는 듯해서 별안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들을 걱정할 어머니에게도 죄송했습니다. 늘어진 몸을 일으키고자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한강에 나가 무작정 뛰었습니다. 뛰고 또 뛰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했지만, 꾸준히 달리니 점점 속도가 붙고 거리도 늘어났습니다. 목표한 만큼 달린 성취감은 그 어떤 쾌감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감이 붙자,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마라톤 대회는 늦가을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습니다. 기껏해야 10㎞ 남짓 달려본 저는 절반도 못 가서 몸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배가 쑤시고, 종아리에 쥐가 났습니다. 발바닥에서는 불이 날 듯했습니다. 가까스로 30㎞를 넘기고 한계에 달하자, 2㎞만 더 달릴 생각으로 차차 속도를 줄였습니다. 그때 뒤에 오던 백발 어르신이 저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거, 포기하려고 하는 거요? 지금 그만두면 몇 날 며칠이고 아쉬울 겁니다. 이 악물고 뛰어 봐요!”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중단하려는 제 모습이 안타깝다’는 어르신의 격려에, 저는 다시 속도를 냈습니다. 결승선에 다다르니, 완주한 참가자들과 응원단이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땀방울이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3시간 34분 동안 뛰면서 보고 느낀 파란 하늘과 바람 냄새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달리기를 하면서 진정 살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도 이를 악물고 뛰어 봅시다.(남궁영진) 그렇습니다. 지쳐서 쓰러지려고 할 때, 누군가가 들려주는 응원과 격려의 한 마디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갖게 합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인생살이에는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나만 홀로 겪는 아픔과 좌절이 아닙니다. 저와 함께하고 있는 이 예림의집TV 방송이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나게 하는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 ![]() |
죄인의 구원..! 우리 인간이 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보내셨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잠깐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일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사람은 없으며 오직 상대적인 관점에서만 선할 뿐입니다. 우리는 상대적인 비교 기준으로 선악을 따지지만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에서 우리를 본다면 우리 자신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구원받는 교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태복음 9:13). 그러나 당연히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구원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선한 사람만 구원받는다면 우리 인간은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인격 수양을 많이 하거나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살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한 사람이 대신 죽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용서받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를 그냥 간과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인간을 멸망하게 내버려 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죄를 누군가에게 옮기는 방법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왕국의 임금이 나라를 망치는 범죄를 근절하고자 엄한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새해 첫날을 기점으로 죄를 짓는 사람은 두 눈을 뽑아버리겠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된 첫날 가장 먼저 붙잡혀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임금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었습니다. 왕은 순간 근심에 빠져 버렸습니다. 깊고 깊은 고민 끝에 임금은 어렵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의 눈을 하나만 뽑고 대신 자기의 눈을 하나 뽑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법을 지키면서도 사랑하는 아들이 맹인 되는 것을 막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구원을 이해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과 죄인이 용서받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라는 반문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 사실이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훨씬 전인 구약시대부터 여러 제도적 모형을 통해 이 구원의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4가지를 말해보겠습니다. 첫째, 구약 시대에는 제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죄를 범하면 소나 양 같은 짐승을 잡아서 안수하여 그것에 죄를 전가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원래는 죄를 범한 사람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그 짐승에게 안수하고 대신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쳐진 소나 양을 대속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세례 요한은 그분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는 예수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 바쳐질 대속물이시란 뜻입니다. 둘째, 제사 모형의 극치를 표현한 것이 바로 유월절 사건입니다. 유월절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약 430년간 이집트의 노예로 고통스럽게 살 때 모세라는 인물이 이집트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낸 사건입니다. 당시 모세가 이집트 왕 파라오를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파라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에 대해선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 |
하나님이 없는 악의 처참한 결과..!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사사기 19장 16-30절) 오늘 본문은 제가 신구약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제일 비참하고 처참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말로가 어떠한지를 정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노인이 레위인 일행을 집으로 영접합니다. 밤에 불량배들이 노인에게 찾아와 레위인과 관계하려고 그를 끌어내라 합니다. 레위인은 자기 첩을 내주고, 첩은 밤새 능욕을 당합니다. 다음 날 죽어 엎드러진 첩을 싣고 자기 곳으로 돌아간 레위인은 그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냅니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처음 보는 일이라 놀라며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합니다. 기브아 불량배들의 악행(16-25절). 기브아에서 유일하게 레위인 일행을 맞아 준 사람은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그들의 발을 씻기고 먹을 것을 줍니다. 그들이 편히 쉬고 있을 때,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22절, 그와 성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창세기 19장 1-5절의 소돔처럼 타락했음을 보여줍니다.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레위 인은 자신의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 내어줍니다. 레위인은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인 사람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위해 아내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레위인의 첩을 넘겨받은 불량배들은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능욕당한 여자는 자기 주인이 있는 집 문에 이르러 엎드려져 죽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관경입니다. 약속의 땅을 약육강식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는 음란과 폭력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건강한 공동체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레위인의 악행(26-30절). 본문에서 제일 악한 것은 자기 첩을 대하는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첩이 불량배들에게 밤새도록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에도 레위인은 편안하게 잠을 청합니다. 날이 밝자 레위인은 길을 떠나기 위해 서두릅니다. 집 문을 열 때 쓰러져 있는 첩을 발견합니다. 그가 첩에게 건넨 말은 28절,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자"가 전부입니다.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첩이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첩을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29절, 죽은 첩을 열 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보냅니다.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끔찍한 사회가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상태는 하나님의 부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그분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으면, 죄는 더 크고 잔인한 악을 쉬지 않고 확대, 재생산합니다. 죄가 장성하도록 내버려 두면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야고보서 1:15). 그리스도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로마서 12:21). 오늘날 우리는 주변 사람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자기 중심으로 대하지는 않는지 하나님 없이 살지는 않았는지 묵상합시다.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정하고 잔인한 세상이 죄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녹아들길 원합니다. 음란하고 더러운 죄악에 무너진 가정과 교회가 말씀으로 다시 세워지고 정결함을 회복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내어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없이는 더욱더 죄의 구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
기도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편 74:28).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품 안에 안기어 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갈급한 마음이 날마다 넘치게 하시옵고, 항상 주님께 기대며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고, 늘 주님과 교통 하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어린양 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달픈 삶이 기다리고 있지만, 먼저 주님 품 안에서 쉼을 맛보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님께 무릎 꿇으니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기도 자체가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심을 믿습니다. 주님을 가까이함이 우리에게 복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리 여유롭지 못한 빠듯한 삶일지라도 기도의 성소만큼은 잃지 않도록 언제나 붙들어 주시옵소서. 향기 진동치 않는 들꽃 같은 삶일지라도 늘 기도의 행기로 하늘 보좌를 진동시키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체취만 맡을 수 있는 이 자리, 우리에겐 그것이 있기에 참으로 행복함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평화를 누리게 하시옵소서. 주님 안에서의 부요함을 맛보게 하시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기도의 자리를 잊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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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 후원 단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요! 그것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를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8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9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홍보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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