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를 부정하는 주장들

예림의집 2021. 5. 9. 20:14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를 부정하는 주장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이 성취되었음을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으로서 인류 구속을 위해 죽은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를 삼으심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가 용서되며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어 타락한 인류가 새 인류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거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과 장사 이후의 비하에서의 승귀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부활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부활은 죗값을 치르고 난 다음 죽음의 자리에 생명을 도입함으로써 오는 필연적 귀결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부활이 이 나라 새 인류의 대표의 부활로서 사망이 멸하고 생명의 새 세상이 창조된 것을 뜻합니다. 즉 부활은 재창조의 시작입니다.

부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 없는 자로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어 죗값을 지불함으로 죄의 세력이 괴멸되었고 사망이 상실되어 물러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를 제거하여 사망이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사 예수가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인류의 머리의 부활로서 우리의 부활을 결정하고 보장합니다. 부활자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부활은 그의 비하 상태를 벗고 하나님으로서의 존재 방식에로 되돌아감이므로 승귀의 첫 단계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권세로 인류를 새 인류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결국 모든 창조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옛 질서로 회복되신 것이 아니라 새 세계 질서와 새 세계의 거주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한 그리스도는 몸과 인격의 동일성을 유지해도 이전의 방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그가 하나님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완전히 현시되었습니다. 이렇게 부활자는 옛 질서가 아니라 새 질서로 돌아오셨으므로 이 옛 질서의 세계에서 항속적으로 살 수 없기에 부활은 필연적으로 승천으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근세 신학은 하나님의 성육신뿐 아니라 대리적 속죄의 죽음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도 부인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이단인 에비온파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들은 유덕한 인물이었던 예수가 세례 받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여 기적들을 행했다가 죽은 후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에비온파는 하나님의 성육신은 믿지 않았어도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근세 신학은 모두 하나님의 성육신을 거부하기 때문에 부활도 전적으로 거부합니다. 자유주의의 아버지인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그의 인격에 관한 교리로 구성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했지만 부활과 승천에 대해서는 조금의 예감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도 그리스도의 특수하고 비교 불가능한 존엄성을 표현한 것이지 가시적 부활과 승천에 근거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하여 부활을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배제했습니다.

근세 신학의 완성자인 내재 신학자 랏츨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고 단지 마리아에게서 낳은 한 역사적인 완전한 인간일 뿐입니다. 예수를 주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리스도의 우위성을 표기하는 것일 뿐이고, 그의 신성도 그의 인격의 영원한 의미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부활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트만은 신약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적 죽음, 부활 등을 다 신화로 여겨 그것들을 비 신화화하고 실존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부활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단지 예수의 생에 역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음으로 끝났지만, 제자들이 그가 부활했다고 선포함으로써 믿음으로 부활을 받아들인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가 실제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몰트만은 소망의 신학을 통해 실존주의 논의를 종식시키고 전통적 신학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모두 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반복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단지 환상을 본 것으로 묵시적인 소망의 상징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예수의 실제적인 육체적 부활은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교회의 신학자인 라이너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불트만 식으로 의미화했습니다. 그도 역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신화로 여기며, 따라서 부활도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인격의 항속적 타당성, 곧 자기를 절대적 구조로 주장한 것의 승인을 듯하는 것으로서 예수는 제자들의 믿음에로 부활했다고 했습니다. 신정통주의자로 알려진 바르트는 예수를 역사적으로 낳아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난 존재로 이해합니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렇게 근세 신학은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완전한 한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으로만 받아들이고, 그의 신성은 상승 기독론에 입각하여 이해하려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나 부활, 승천 등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의미적으로 또 실존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계시 자체를 부인하는 주장으로서 결코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도 없고, 그 가능성조차 허용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