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예수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시는 하나님

예림의집 2021. 4. 16. 21:00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원래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 가능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던 에덴이라는 고향에서 쫓겨나서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면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언어란 원래 모국을 떠나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면서 원래 사용하던 언어를 잊은 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가 둔해져 듣지 못하고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 말하는 능력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혀가 딱딱하게 굳어 혀의 정교함을 잃어버린 결과 옛 기억들도 하나씩 잃어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다시 대화하길 원하셨던 하나님에게 침묵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과의 친밀한 교제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사람과 다시 대화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시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옛 에덴에서 하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하신 사랑의 언어였습니다. 반면에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아는 걸 무척 싫어했습니다.

사람에게 낯선 존재였던 예수님이 에덴의 언어, 즉 하나님의 언어로 말하자 이기적인 본성을 지닌 인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 좋은 말씀이야. 그런데 그분은 모든 걸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분이 말하는 순결함, 소박함, 온유함이라는 게 진자일 수 없거든." 아무리 노력해도 그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당시는 그분에 대해 듣지 못한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삶 속에 예수님의 순결함을 받아들여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계셨을 때에는 엣 언어의 형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언어일 뿐 가장 오래된 옛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가장 오래된 옛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에덴 박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언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이 생각하는 옛 언어만을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처음부터 예수님에게 반감을 가지며 충돌할 수박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고집하는 언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충돌할수록 사태는 더 나빠졌고 결국에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최악으로 치닫는다 해도 예수님이 에덴의 옛 언어라는 진리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이것이 예수님에게는 최선이었습니다.

에덴의 언어(하나님의 언어) 중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훌륭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우선 순결함은 에덴의 자연스러운 삶을 의미했고 순종은 에덴의 조화로움을 뜻했습니다. 평화가 에덴의 아름다운 음악을 가리키는가 하면, 권세는 에덴의 승리와 통치를 상징했습니다. 사람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나타내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 중에서도 가장 크고 빛나는 글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글자를 만드실 때 세상에서 가장 큰 대문자를 사용하셨는데 그 글자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새로운 글자가 빨간색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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