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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

예림의집 2021. 3. 19. 14:07

참된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사도행전 3:11-26).

 

서론:

성전 문 앞에 앉아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날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이야깃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드나들면서 그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가 치유되어 걸어 다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걸하던 그에게 동전을 던져 주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비록 구걸하는 사람이었지만 사실 예루살렘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11절, 치유받은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는 행각에 모였다고 합니다. 왜 그는 사도들을 놔주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가 덜 치유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3장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증언했고, 베드로는 16절, 베드로는 그가 나사렛 예수를 믿음으로 완전히 낫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치유된 장애인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으로 보아 그는 완전히 치유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고침 받은 데 대해 감사하기 위해서이고, 그들의 말 하는 나사렛 예수에 대한 강한 끌림이 있어서입니다.

베드로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12절의 베드로의 말을 반추해 보면,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주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중들은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킨 베드로의 말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베드로는 벌어진 일에 대해 너무 놀라워하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일으킨 분은 자신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자신들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나타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사도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권능이 사도들을 통해 행해진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약속하신 내용과 일치합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하신 약속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일으킨 기적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사도들의 겸손과 정직함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자기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조금 전에 일어난 기적을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구걸하던 장애인을 치유한 능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그 사람을 결코 치유하지 않았다고 단언했습니다. 그 기적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본론:

본문을 더 묵상하기 전에 우리가 이야기한 내용을 좀 더 깊이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 행해지길 기대합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실 것을 기대합니까? 만약 성령님이 여러분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어루만지시는 것을 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사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닫게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서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만약 그 영광스러운 일을 나의 공로로 만든다면 나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자신의 공로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주목과 찬사를 오직 주님에게만 돌리는 베드로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기대와 겸손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균형이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할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 권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진실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향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주님께로 돌려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주님만이 사람들에게 드러나야 할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23-2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3절, 예수님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그날 군중 속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이 세상 앞에서 예수님을 모욕하고 비참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은 지금 사람들이 보았던 한 장애인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중 그 기적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4절, 예수님은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십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베드로는 군중들에게 예수는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은 오직 메시아에게만 합당한 표현이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은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따라갈 수 없는 타락한 존재들입니다. 의로운 자로 불림을 받을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날 모인 유대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신 메시아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분이 바로 메시아라고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위험한 말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15절, 예수는 생명의 주이십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주인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생명뿐 아니라 육체적인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3절을 통해 만물이 예수님을 통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주인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음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주인이 육체적으로 병든 자를 치유하시는 사건은 베드로에게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메시지를 청중들에게 선포하면서 그들이 비록 예수를 죽이는 무지한 행동을 했지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의 행동은 거룩한 분에 대한 반역이며, 이는 이미 오래전에 예언된 것임을 상기시켰습니다. 또한,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이 메시아에게 고난을 준 장본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 사람들도 19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장애인에게 주어진 치유의 은혜가 그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날 그 장애인의 치유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잘 드러난 모범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이제 용서받고 완전히 회복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는 예수가 다시 오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예수님은 만물을 하나님의 것으로 회복시킬 것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을 멸망의 길로 인도했으며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탄의 일을 모두 멸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야말로 어둠의 권세를 끊고 예수님의 능력을 미리 맛볼 수 있는 작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용서받을 기회를 저버리는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모세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3절을 함께 읽습니다.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구원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의 운명은 하나님과 영원히 멀어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날 24-26절, 모인 사람들에게 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선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위대한 계획에 대해 이미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주셨고, 지금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주님께로 돌아오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도 사람들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초청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본문의 기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오직 주님께로 향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적은 예수께서 살아계시고 그의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인 것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베드로가 주님을 알리기 위해 치유의 기적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알리기 위해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평범한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혹시 하나님이 우리 개개인의 삶을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우십니까? 우리가 행하는 작은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듯이 생명을 구원하는 기적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본문을 통해서 가르치시는 겸손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한 주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주님, 우리의 삶에 주님의 능력이 충분히 나타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의 작은 사역들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구원 사역에 방해가 되는 교만과 거짓을 물리치고 겸손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담대하게 주님을 위해 일하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