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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

예림의집 2020. 9. 10. 13:32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 싶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말없이 이곳저곳을 걷습니다. 그렇게 걸으며, 저는 혼자 생각하곤 합니다. 이렇게 다정히 지낼 수도 있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그토록 피 흘려가며 싸웠던 걸까? 신혼의 단꿈은 겨우 몇 달, 우리는 첫해가 다 가기도 전에 부딪치기 시작해서 몇 년을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남편은 아마 손쉽게 ‘고부 갈등’을 이유로 꼽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못 견뎌 했던 건 시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었으니까요. 바람막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내의 애로와 고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텐데, 남편에겐 그런 면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중심이고, 각자의 원(原) 가족은 그다음이어야 할 텐데, 남편에겐 그 순서가 뒤집혀 있었습니다. 

나란 존재는 뭔가 싶으니, 저는 점점 더 치졸하고 까칠한 사람이 되어가더군요. 원래의 ‘나’라면 선선히 응하고 넉넉히 내어줄 일도, 자꾸 브레이크를 걸고 입을 내밀게 되더란 말입니다. 물론, 그런 다툼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선에서 우린 타협하고,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게 되었지요. 문제는, 그 이후로 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투는 대신, 모른 척하고 거리를 두다 보니, 둘 사이에 냉기가 스며들었죠. 그렇게 재미없고 지루하게 십수 년을 살아온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 싶습니다. 남편을 뜯어고칠 능력이 안 되면 차라리 내가 다 져주고라도 하하 호호 웃으며 살았어야 하는데, 알량한 자존심상 그러지 못했지요. 그러다, 나이 오십에 이르고야 남편에게 ‘안아 달라, 손잡아 달라’ 요구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습니다. 곁에서 걷는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