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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당장 오늘 밤에 시작합시다!

예림의집 2020. 9. 9. 07:42

산책은 당장 오늘 밤에 시작합시다!

 

우리는 밤의 공원을 걷고 있습니다. 늦은 시각이지만, 공원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낮보다는 서늘하고 한적한 밤을 택해서, 갇혀 지내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나왔을 사람들. 그중에는 우리 같은 중년부부들이 많습니다. 말없이 앞만 보고 걷는 부부도 있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걷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손을 맞잡고 걷는 부부는 여간해선 안 보입니다. 우릴 보고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저 나이에, 아직 저렇게 다정한 부부도 있긴 있구나!’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지요. 우린 남달리 다정한 부부가 결코 아닙니다. 지난 6월, 코로나의 답답한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제가 남편에게 제안했거든요. ‘내 요구를 들어주면, 나도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요. 남편은 ‘요구 사항이 뭔지?’ 묻더군요. 저는 남편의 눈을 보며 당당히 말했습니다. “하루 한 번 힘껏 포옹해 주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나랑 손잡고 산책 다니기!” 

남편은 얼떨떨한 동시에 뭔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하는 표정이더군요. 저는 남편을 안심시켰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둘만 집에 남고 보니, 부부간에 다정한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어요. 우리가 갑자기 다정한 부부가 될 순 없지만, 다정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짓을 흉내 낼 수는 있지 않나요? 그럼, 남들은 우리가 꽤 다정한 줄 알고 부러워하겠지요.

그런 부러운 시선을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어요.” 제 설명을, 남편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더군요. 그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라며, 남편은 즉시 저를 끌어당겨 안았습니다. 1, 2, 3, 4, 5… 속으로 다섯을 세고, 우리는 슬그머니 떨어졌지요. 기분이 묘하더군요. 너무나 익숙한데, 너무도 어색했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목소리를 더욱 높여 말하더군요. “산책은 당장 오늘 밤에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