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실천신학

청중을 사로잡는 설교의 삼중주 - 서평

예림의집 2020. 8. 12. 21:07

청중을 사로잡는 설교의 삼중주 - 서평

 

김동영

 

항상 설교를 준비하다면 나는 이러한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청중들이 나의 설교를 들을 것인가? 현재의 교회에서 장년 오후 예배, 청년, 주일학교, 학생, 구역예배에서 설교를 하는 나는 비교적 동기 전도사들보다 많은 설교를 하면서 과연 내가 하는 설교가 성도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었다. 과서 우리는 삼 대지 설교를 배워왔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삼 대지 설교를 이용하여 설교하고 있고, 설교를 삼부분으로 나누지 않으면 왠지 설교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삼 대지 설교는 한국 강단의 표본으로 자리 잡아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젊은 목사님들과 유학파 목회자 중심으로 원 포인트 설교나 삼 대지 설교를 벗어나 설교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설교가 많은 청중들에게 조금 더 잘 인지 되어지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고 이번 학기에 설교와 수사학이라는 과목을 통하여 신성욱 교수님께서 집필한 설교의 삼중주를 통하여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교수님은 첫 장에서 성경을 올바른 관점에서 제대로 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성경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한,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치려 하시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의 올바른 관점이 중요하다. 과거 삼 대지 설교는 하나의 과점으로 보아야 할 설교를 억지로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려고 하다 보니 억지스러운 해석과 잘못된 해석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삼 대지 설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설교 본문에 정확한 관점을 파악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단어와 문맥들을 정확히 인지한다면 정확한 해석으로 인한 올바른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수님께서 제시한 6단계 설교 구성법을 살펴보면 조금 더 설교에 대한 구체적인 틀을 쉽게 짤 수 있을 것 같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주의를 끄는 단계-문제 제시-문제 해결법-선명한 대조-구체적 실례-행동으로 이끄는 단계로 6단계로 이룬다. 전체적인 틀이 하나의 문맥처럼 흐름으로 인해 주의를 집중시키며 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삼 대지 설교가 하나의 주제 아래 다른 소주제를 둠으로 주의를 집중시키는데 부족함을 가졌다면 신 교수님께서 제시한 구성법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문자 같은 설교를 같게 한다. 

설교는 전하는 자도 은혜가 되어야 하지만 듣는 자도 은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물 흐르듯이 이어준다면 청중도 편안한 마음으로 설교를 듣게 되고 설교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보자 영화를 보는 도중에 영화가 중단되어 5분 정도 지난 후에 영화를 다시 본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우리는 5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잊어버린다. 다시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허비하지 않아야 할 시간을 다시 드려서 영화에 집중하다 결국, 영화를 재미없이 보고 나온다. 이것은 하나의 흐름이 우리의 인지능력 속에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준다. 설교도 이처럼 전체적인 흐름을 연결해 주면서 그곳 가운데,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전체를 연결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맥만 가지고 설교를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앞서 영화의 표현을 조금 더 연장 시켜보자면 우리는 모든 영화를 다 재미있게 보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 영화가 얼마나 스토리를 잘 구성하고 적당한 소스를 부과했냐에 따라 영화를 재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3장 통하여 이 해법을 찾는다. 과거 한국 설교의 중심 중에 하나가 정죄형 설교였다. 이러한 설교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 가기 위해서 회개하고 우리의 죄를 자복해야 한다. 하지만 매일 정죄당하는 삶 속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서 저자는 위로와 희망형을 먼저 활용하라고 말한다. 대화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먼저 자신의 잘못을 드려내고 말하는 말에 좋은 마음을 가질 자가 누가 있겠는가? 또한 궁금 유발형 비연기법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미 본문을 들으면 아! 오늘은 무슨 설교를 하겠구나라고 짐작하는 설교가 아니라 청중 스스로 오늘은 무슨 설교일까?라는 궁금증이 유발되어질때 더 많은 생각과 집중을 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저자의 책 내용을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설교하는 자에 있어서 설교를 듣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교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케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과 나 자신도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설교의 삼중주가 이러한 한국의 설교의 패턴에 작은 돌을 던지는 것 같다. 우물가에 작은 돌이 던져진다고 해도 그 파장은 우물 끝까지 이른다. 이 책이 나에게도 작은 돌의 파장이 설교의 강단 끝까지 이르고 한국 교회의 강단에 더 많은 파장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