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의 주체
하나님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은 것, 곧 성육신이 비하입니다. 그런데 성육신은 하나님, 곧 신적 위격이 인성을 입은 것입니다. 따라서 비하의 주체는 신격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취하여 종의 형상을 입었으므로 성육신 자체가 하나님의 비하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바른 진리요 개혁신학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루터교회는 하나님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은 것, 인성을 입은 그 자체는 비하가 아니라고 합니다. 성육신으로 신성의 속성들이 인성에 전달되었는데, 인성이 전달된 신적 속성들을 쓰지 않고 감추인 것을 비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적 위격이 인성을 입으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비하요, 또 그러하기에 비하의 주체는 신격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하는 고난과 죽음에까지 이르므로 성육신 자체가 비하입니다. 그렇다면 신성, 곧 하나님의 본성은 고난과 죽음을 맛보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바로 신성의 비수난성과 비감지성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주장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본성은 고난에 종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즉 신성이 인성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고난에 종속하면 하나님이 변화에 종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성의 비수난성, 비감지성에 의해 성육신은 비하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성적 수난이 아니라 위격적 감수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입으신 것 가체가 모두 다 비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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