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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

예림의집 2020. 6. 18. 06:01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에 등장하는 세속화 된 교회의 모형입니다. 주님은 종말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에 대하여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신 일이 있습니다(마 18:8). 종말 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자기 자신에게는 부요한 믿음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주님은 곤고하고 가련한 믿음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멘’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참으로’란 뜻입니다. 진실과 충성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은 그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그 사명을 다 이루신 분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책망받은 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데 교회와 함께 칭찬을 받은 일은 한 가지도 없고 모두 책망뿐입니다. 그러나 그 책망 속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깃들어 있고 회개했을 때 그들이 받을 축복이 굉장히 크다는 사실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네가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웁다는 말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워진 심령을 말합니다. 마음과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입니다. 이 신앙은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에서 나옵니다. 반면에 차다는 말은 신앙적으로 냉담하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영적인 뜨거운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옛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들 나름대로는 가장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대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교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더웁든지 차든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비위를 건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미지근하다는 말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한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분명한 선택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이런 결단이 희미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그들에게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미지근한 생활을 계속하면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는 경종을 내리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함이 없이 그들의 신앙생활이 계속 미지근하여 열매를 맺지 못할 바엔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신 말씀은 어떤 징계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장차 무서운 환난 가운데 던져 넣어서 불같은 시련을 받게 하시어 올바른 신앙을 가지게 하실 것이라는 경종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회개치 않고 그대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한 일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 상태는 주님 보시기에 외식과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백하고 있었던 것처럼 부요했습니다. 성도들은 물질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사하고 집을 짓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너무나도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니 교회도 물량적으로 굉장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야말로 종말 교회의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

그런데 문제는 주님은 그렇게 인정해 주지 아니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우리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가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 부요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 부요는 그들의 재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자가 되는 부요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부요는 환난과 궁핍을 통해서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환난과 궁핍 중에서 신앙적인 연단을 받으므로 성장한 아름다운 믿음을 가리킵니다.

다음에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흰옷이란 의의 세마포 옷을 말합니다. 이 흰옷은 진실한 회개에서 얻을 수 있는 의의 옷입니다.

다음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밝았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을 바라보는 눈은 어두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안약을 사서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안약은 세상 재물에 소경 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신령한 약인 것입니다(요 9:39-41). 

 

결론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에 세상에 범람할 교회의 모습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이런 교회를 선망하고 부러워할 것입니다. 종말 교회는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물량적인 외모에 만족하는 세속화된 교회를 이룰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같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많은 교회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신앙의 미몽 속에서 빨리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간곡한 부탁처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하므로 그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