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눈을 씻어라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어 고통 속에 빠지게 될 때 대부분의 경우 그 고통의 원인을 다른 사람과 환경 탓으로 돌릴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일는지요?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주님께 묻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 불쌍한 소경이 그때까지 어둠 속에서 살아왔지만 마침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뜻이었지요.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으로 언뜻 보기에는 비상식적이고 비위생적인 방법이지요.
이때 이 소경은 당연히 지난날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열거하면서 나는 아무 죄도 없는 피해자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불평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소경으로서의 고통스러운 그의 삶은 그의 잘못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그의 책임임과 동시에 기회였지요.
감사하게도 이 소경은 불평 대신 순종을 택해 눈이 뜨여 빛을 보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지요. 오늘도 사람들은 수많은 고통의 굴레 속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의 원인을 다른 사람과 환경의 탓으로 돌립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탓하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렇지만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당할 때 아무도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꼬임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욕심이 죄를 낳고 그 죄가 죽음을 낳게 된다는 말씀인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경의 경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면서 삶 속에서 온갖 고통을 자초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면서 외로움과 좌절감의 노예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가정과 직장과 교회 안에서까지 실패의 보따리를 안은 채 신음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책임지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어떤 심리적인 치료방법을 쫓아다니며 방황하게 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통을 당할 때마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죄악을 따라 살았던 나의 잘못을 회개해야겠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역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어떤 때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비합리적이고 매력적이지 못해 보이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경처럼 그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쓰임 받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직 하나님만이 상한 심령을 치유할 수 있다』라고 하는 한 권의 귀중한 책을 여러분에게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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