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도전..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평화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정반대되는 말씀으로 도전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태복음 10:34-36).
주님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형제 사이에 검을 겨누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필 그 대상이 가족일까요? 그 이유는 팔이 안으로 굽는 우리의 치우친 사랑이 평화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이 더 넓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치우친 사랑을 넘어서서 주님의 사랑으로 더 넓게 볼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에게 참 평화의 길을 알려 주시려고 우리의 특별한 사랑에 검을 들이대시면서 우리를 평화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애국주의자가 될 수 없고, 민족주의자도 될 수 없습니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면서 유럽에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을 때, 독일의 목회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아돌프 히틀러를 반대하는 일을 하다가 붙잡혀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때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반대하는 편에 서 있었지만, 아마도 당시 독일의 목회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이나 국민은 그를 매국노나 반민족주의자로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디트리히 본회퍼는 진정 주님의 평화가 독일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벌이면서 아시아의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했을 때 일본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우치무라 간조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 일본이 망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이면서 일본이 망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때 그는 동족으로부터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애국심도 없다며 지탄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 민족을 사랑했기에 나라가 가는 길이 잘못되었을 때 함께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평화를 아는 사람은 한쪽에 서 있지 않고 중간에 서게 됩니다. 때로는 양쪽에서 오해를 받더라도, 왕따가 되더라도 오직 주님이 서셨던 것처럼 가운데 섭니다. 그들이 갈라진 틈을 메우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물 것입니다. 늘 가운데 서는 사람이 되십시오. 넓은 사랑으로 모두를 품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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