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심..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비록 자기 것이라 해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권리조차도 포기하는 보다 고귀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일명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우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더 깊이 들어갑니다. 사랑은 우리이 권리를 추구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의 계산에서 인격적인 요소를 제거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예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너를 위하여 큰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예레미야 45:5)라고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 가운데는 위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일이란 위대한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어떠한 것도 고통이 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멍에는 메기 쉬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명에"란 주님이 사신 그대로 사는 것인데 그것이 다른 어던 길보다 더 쉬운 길이며 보다 더 행복한 길임을 나는 믿습니다. 주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두드러진 교훈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소유하거나 차지하는 것보다는 주는 데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행복이란 소유하거나 차지하거나 또는 타인의 대접을 받는 것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가복음 10: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욱 축복받고 행복하게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기어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