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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아버지의 비유

예림의집 2020. 3. 6. 08:28

비정상적인 아버지의 비유


그런데 자유와 정의 둘 다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자유를 위해 달려왔는데 이것이 정말 옳은 길일까요? 우리는 정의를 위해 달려왔는데 이것이 정말 옳은 길일까요? 우리는 정의를 위해 달려왔는데 이것이 정말 옳은 길일까요? 무엇이 더 중요하며, 우리가 진정 가야 할 바른길은 무엇일까요?

본문인 누가복음 15장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비유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져다가 탕진해 버린 비정상적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탕자의 비유(prodigal son)"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비유를 가리켜 "비정상적인 아버지의 비유(prodigal father)"라고 일컬었습니다. 'prodigal'은 '낭비하는'이라는 뜻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정상적이지 않은'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비유에 나오는 두 아들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들들이고, 오히려 아버지가 흔히 볼 수 없는 아버지, 너무나 비정상적인 아버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아버지이기에 '비정상적인 아버지의 비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직 철도 들지 않은 이들이 유산을 요구해서 챙긴 뒤 마음대로 나가는데도 막지 않고, 야단치지도 않고, 아낌없이 주고 보내는 아버지. 그런 아들을 마음에서 밀어낸 것이 아니라 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소중한 제산을 다 탕진하고 망해서 돌아왔는데도 애 그랬냐고 따지지 않고 달려가서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어 주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동생에 대해 분노한 큰아들을 야단치기보다는 달래고 타일러서 동생과 함께 잔치에 참여시키려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과연 우리가 세상에서 볼 수나 있는 것일까요? 정말 비정상적인 아버지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이 아버지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강한 권위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없이 부드러운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분의 마음을 온전히 알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배우고, 소유하게 되어서 그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요, 뜻입니다.

비유의 무대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행복하게, 기쁘게, 늘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함께 있었지만 만족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두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단지 답답한 울타리로 여겼던 것 같고, 행복하다고 여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작은 아들은 자유를 외치며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고, 큰아들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상태에서 아버지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둘 다 아버지에게 만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두 아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지만, 가만히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우리 안에도 두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속에 자유를 추구하는 작은아들과 정의를 추구하는 큰아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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