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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은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

예림의집 2019. 12. 25. 07:08

성령 충만은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


①성령 충만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결심 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②특별히 죄를 고백하게 하실 때, 순종하기 어려운 것에 순종하라고 하실 때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성령님에게 완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사도행전 5:32). 위의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겠느냐"라는 말은 성령 충만 여부를 분별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아직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기쁨과 확신에 차 있고,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제자가 군대에 가기 전에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을 갔고,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적응하기 어려워서 1학년 때 자퇴를 했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습니다. 이 학생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자신의 삶은 고아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살아계신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믿으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 학생이 저를 만나러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관계가 좋지 않은 한 친구가 있습니다. 분명 제가 더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억울함 때문에 관계를 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군대 가기 전에 이 친구와 화해하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왜 제가 먼저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니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큰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이 용서해야 되는 거야!'라고요." 자신이 하나님 앞에 더 큰 사랑 받고 있고, 큰 용서를 받고 있으니, 자신이 먼저 용서하고 다가가는 것이 맞다는 것이 믿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집으로 불러서 밥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리고 화해를 하였답니다. 성령님에게 완전히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어떤 것을 명령하시든 "순종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리라"라는 결심만 있으면 됩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생명이고, 능력이며, 스스로 충만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셨고, 홍해를 가르셨고, 나사로를 살려내신 분입니다. 성령님은 그분의 권능이 우리를 통해 가정과 학교에 사랑으로 흘러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은혜의 강을 막고 있는 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둑은 바로 우리의 자아입니다. 우리의 자기 계획, 자기 의지, 완고함, 불순종, 믿음 없음,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이 둑이 터져야 합니다. 가정,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 강둑이 터져야 성령님이 주실 은혜가 부어질 것입니다. 그 강둑은 오직 성령님에게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고집과 불순종을 꺾을 때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로 고백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로 고백했을 때 고집과 불순종 역시 죽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사도 바울을 통해 강 같은 은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니님에게 완전히 순종하고 싶은 마음과 소원이 없는데, 하나님이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결심 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랑할 수 없어요."하는 것과 "하나님, 용서하겠으니 힘을 주세요. 사랑하기 원하니 힘을 주세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결심 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라 하시든지 그대로 하실 결단이 섰습니까? 그러면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완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무엇에 순종해야 할까요?


첫재,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죄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성결함 위에만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충만히 받으려면 회개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1907년 정월, 평양 장대현 장로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마지막 집회가 끝나고 장대현 장로교회 수석장로였던 길선주 장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와서 예기치 못한 말을 합니다. "제가 아간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저 때문에 하나님이 부흥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길선주 장로가 자기가 지은 죄를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200원이나 되는 거금을 저에게 유산으로 맡겼습니다. 안심하고 맡길 사람은 저밖에 없다면서 자기 아이들이 자라면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200원을 맡겼는데, 100원을 급한 일에 써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나머지 100원만 주었습니다."

길선주 장로의 회개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숨겨 놓은 자신의 죄를 털어놓으며 통곡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예배당에 충만하였습니다. 이런 회개의 집회가 적국적으로 번져갔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는지, 경찰들은 실적을 올리려면 교회로 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회개, 이것이 한국 교회 부흥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1단원에서 살펴보았듯이 내가 살인을 해서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살인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과 용기만 주어지면 그 미움이 살인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살피십니다. 그때 우리 안에 탐심, 교만, 음란함, 미움 같은 죄가 죄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안에 "저는 은밀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미워한 것 용서해 주세요.", "나의 교남이 사라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저는 불평불만이 너무 많았어요.", "제가 불순종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자기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면 그는 성령을 충만히 받았거나, 곧 성령 충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이 회개하라고 깨닫게 해 주시는 죄에 대해 회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둘째,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명령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과거에 한 것을 우려먹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순종은 내가 가능한 것만 하고, 어려운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셨습니까?"라는 것은 "지금, 온전히 순종하였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 돼서 살아가는 삶에 나타나는 특징은 '염려와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입니다.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겠느냐?"라고 물으면 행복해하는 것보다는 고난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브리서 5:7-9). 예수님도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태복음 26:39). 성령 충만하면 전도하게 되지만, 전도하다가 성령 충만하기도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찬양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주님을 위해 이렇게 전도하는 것이 즐겁고 감사합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전도하는 다른 사람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낯선 사람에게 말도 못 했을 겁니다. 그런 제가 이번에는 시선 따윈 생각도 안 하고 앞장서서 전도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너무 행복하고 가슴이 벅찬 경험을 해서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처음에 노방전도 나간다는 말을 듣고서 전도가 제일 싫었고 쪽팔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하고 온 지금은 내가 예수님을 위해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한 명의 영혼을 드리는 것이 더 귀중한 일이고, 그것이 나 곧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전도로 제 마음에 주신 기쁨이 항상 마음속에 남도록 주님에게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중1 간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