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예비적 고찰
장르
개론이라는 장르는 구약학 내에서 분명하게 설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개론은 성경을 정식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탐구를 시작할 때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책들 중의 하나이다. 개론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 주제의 예비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영(E.J. Young)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용어는 "안으로 안내하다(lead in)" 혹은 "소개하다(to introduce)"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단어 introducere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이 개론서의 목적은 다른 모든 개론서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구약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고자 할 때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더 현대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우리의 목표는 학생들이 해석 능력(reading competence)을 얻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성경학의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많은 개론서들이 존재해 왔다. 이 장르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시 반복해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장르의 발전과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이 책의 틀을 잡는데 어느 전도 도움을 얻기 위해서 몇 가지 중요한 전환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교회 교부들은 우리가 오늘날 구약 개론서라고 부르는 종류의 책들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개론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책에 들어갈 만한 주제들에 대해서 취급했다. 다시 말해서 제롬,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겐 등은 저작권, 문체, 정경성, 사본, 신학적 문제들 등의 주제들에 대해서 글을 썼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들은 한 권의 책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차일즈와 영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구약 개론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영은 미카엘 발터(1636년)가 총론적인 객관과 각론적인 개관의 문제를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의 책이 첫 개론서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차일즈는 1780년부터 1783년에 걸쳐 세 권으로 된 개론서를 펴낸 아이히호른을 첫 개론서의 저자로 본다. 이런 견해 차이는 영감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한 발터의 책의 가치를 인정하는 보수주의자 영과 비평학적인 방법 도입 여부를 최초의 “진정으로 근대적이고 역사비평학적인 개론서(1979,35)”의 기준으로 삼는 비평 학자 차일즈간의 입장 차이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20세기의 개론서들은 구약학의 전반적인 발전 방향들을 따라 진화를 거듭했다. 그래서 율리우스 벨하우젠이 문서설을 도입한 후에는 모든 개론서들은 그의 이론을 다뤄줘야만 했다. 양식 비평과 전승사 비평 등 새로운 발전들이 이뤄질 때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비록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개론서들이 비평학적인 방법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평학적인 개론서들 사이에서도 차이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점들은 현재도 계속 사용되고 있는 개론서들을 표본 조사해 보면 드러난다. 아이스벨트의 개론서는 고전적인 독일 비평 학계를 대표하고 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성경의 각 부분들의 형성 과정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그는 오경의 문서설적인 부석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그의 책이 세부적인 내용들에 있어서 나름대로 독특한 점들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평학적인 전통 속에서 렌토르프는 다소 다른 접근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오경과 관련하여 노트 및 폰 라트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그는 더욱 역사적인 분석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에 치일즈는 구약성경의 각 책들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의 문제들을 괄호 속에 집어넣고 대신 각 책들의 정경 상의 기능들에 대해서 개괄하고 있다.
앞의 문단들은 구약 학계의 주류에 대한 전반적인 윤곽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유럽, 영국, 미국의 비평학적인 개신교 구약 학계의 발전 사상들을 개관하고 있다. 개신교 구약 학계는 지금까지 주류를 차지해 왔다. 왜냐하면 19세기 초 이래로 서경 본문에 대한 이들의 접근 방법이 대부분의 큰 교회 집단들, 그리고 사실상 거의 전 학계의 중심을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저술 및 교육 활동을 한 가톨릭 학자들과 유대교 학자들 역시 이들이 개진한 학문적 주장들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수가 적기는 하지만 이 분야에는 단호한 입장을 가진 보수적 개신교 학자들도 역시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면서 구약 개론서들을 출판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론서들은 영, 아처, 해리슨, 라솔-부쉬-허버드 등이 쓴 책들을 꼽을 수 있다. 이 개론서들은 그 길이나 관심분야에서 서로 차이가 난다. 그리고 신학에 있어서도 서로 다르다. 비록 이 책들이 다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성경 본문을 접근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 책들 대부분에서 드러나 있는 보수적인 학자들의 특징은 변증학적인 사항들에 대한 관심이다. 비록 이러한 관심이 라솔-부쉬-허버드의 개론서의 경우에는 아주 미미하게만 드러나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보수주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대부분들의 논의를 역사비평학적인 방법에 대항해서 싸우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오경의 문서설적 연구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목적
앞의 논의는 이 책의 목적들과 목표들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배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진술하는 내용들은 이 개론서의 구도에 대해서 지침을 제공해 주고, 이 책에 채택된 접근 방법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이 개론서가 지향하고자 하는 점들과 이 개론서가 다른 통상적인 개론서들과 다른 점들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신학적인 시각
우선 이 개론서는 본문에 대해서 프로테스탄트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접근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인 성향은 여러 가지 비평학적인 문제들을 논의할 때 특히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교리가 모든 해석학적이고 주석적인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지는 않으며, 또한 이런 태도가 우리로 하여금 역사비평학의 전통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우는데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개론서는 복음주의적인 진영과 더불어 비평학적인 학자들이 수고해서 얻은 결실들에도 의존하고 있는 경우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복음주의 학자들과 비평 학자들의 사이를 갈라놓은 많은 문제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상호 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상호 대화와 상호 존경의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개론서는 비평학적인 연구들이 잘 준비해서 내린 결론들과 많은 경우 의견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움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심을 가지고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복음주의 학자들이 때로는 오직 학계에서 환영을 받기 위한 일념으로 무비판적으로 비복음주의 학계의 흐름들을 따라가는 것을 비판한 건드리의 지적에 동의한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복음주의적 시각에서 개론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교회가 물려받은 그대로 성경을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서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나 개별적인 성경책들의 형성 과정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개론서는 최종적인 형태의 정경 본문에 정통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접근 태도는 정경 신학, 그리고 성경의 문학적인 연구에 대한 최근의 관심과 잘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비록 이것이 환영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의 유사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피상적이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에 대해서 공시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는 비평 학자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통시적인 문제들을 단지 일시적으로 괄호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일즈가 그 좋은 예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역사비평학을 버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이 신학과 교회에서 하고 있는 정경적인 역할을 강조해 주기 위해 이런 관심사들을 격하시키고 있다. 출애굽기에 대한 그의 주석(1974)은 공시적인 문제들과 통시적인 문제들의 관계에 대해서 아주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주석에서 이 두 부류의 문제들은 공존하기는 하지만 서로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범위
구약의 개론서는 총론적인 개론과 각론적인 개론의 두 가지 영역으로 보통 나눈다. 총론적인 개론은 전 성경을 포괄하는 주제들, 즉 사본이나 정경 등의 문제들을 다룬다. 각론적인 개론은 개별적인 책들을 다룬다. 우리 개론서는 각론적인 개론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성경상의 책 순서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특히 이 책에 채용된 순서는 영어성경의 독자들이 알고 있는 순서가 될 것이다. 이 순서는 맛소라 전통에 서 있는 히브리어 성경의 순서를 따르는 다른 많은 개론서들과 차이가 난다.
위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개론서들은 성경의 각 책과 관련된 역사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통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보수적인 노선이나 비평학적 노선의 구분이 없다. 저작권, 저작 연대, 사본 발전 과정의 문제, 각 책 내용의 역사적 배경의 문제 등이 통시적인 문제의 전형적인 예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이 책에서도 필요한 경우에는 역시 다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이외에도 독자들에게 구약의 책들에 대한 개관을 제공해 주는 데 있어서 중요한 논제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문학적인 장르, 형태, 문체 등의 문제들은 바른 개관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이다. 게다가 비록 성경이 각 책이 정경 상의 다른 책들과는 별개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책의 현재의 의미는 정경의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경우에는 신약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각 책의 신학적인 메시지를 광범위한 정경적 맥락 속에서 다소 충분하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세 가지 문제, 즉 역사적 배경, 문학적인 분석, 그리고 신학적인 메시지의 문제가 각 장의 논의의 내용을 구성할 것이다. 우리는 이 장의 두 번째 부분에서 이 세 가지 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을 제공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독자들은 이런 주제들을 다 포괄하면서 어떻게 이 개론서의 길이를 적당한 크기로 유지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고는 했다. 우리는 이 책이 수업 시간에 효율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책의 크기를 제한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다른 개론서들의 경우보다 조금 덜 다루는 주제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연구사에 대한 것이다. 오경의 문서 분석 등과 같은 몇 가지 비평학적인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연구사 속에서 중요한 순간들만을 포착하고자 할 것이며, 과거의 학자들에 대한 총괄적인 개관을 하기보다는 대표적인 학자들만을 언급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눈을 밝게 해준 연구들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참고문헌 목록들은 관심 있는 독자들이 해당 책의 연구사를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들의 목록을 제공해 줄 것이다. 참고문헌들의 경우에는 영어로 쓰인 책들과 소논문들에 우선권이 주어져 있음을 독자들은 발견할 것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독일 학계가 이 분야에서 첨병의 역할을 하던 것으로 생각되던 시대가 종결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신학대학원 학생들에게 이런 참고문헌 목록들이 유효적절한 것이 되게 하려는 우리의 노력에서 기인한다. 외국의 참고문헌 목록들은 오직 논의에 매우 중요한 경우에만 목록에 포함되었다.
중요한 논제들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각 장은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각 책의 역사적 배경, 문학적인 분석, 신학적인 메시지를 다루고 있다. 이 개론적인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 세 가지 논제들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자 한다. 다음의 내용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본 필자들의 성향을 이해시키고, 또한 본 필자들이 이런 더 일반적인 내용들에 대해서 재론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세 가지 논제가 비록 분리되어서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들은 이 주제들이 성경 본문에서는 완전히 통합된 형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는 신학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신학은 역사적인 사건들에 근거하고 있다. 이처럼 신학적인 역사 혹은 역사화된 신학을 펼치고 있는 본문들을 우리가 문예적인 작품으로 부르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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