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으로 사는 삶
①믿는 자의 놀라운 승리는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에 생생히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②믿는 자들의 삶의 목표는 '매일 죽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이 순교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은 '죽음'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내가 죽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죽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이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겠지만, 죽음 이후에 놀라운 승리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면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승리는 바로,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음이 실제가 되면 그때부터 진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두려움, 염려, 걱정, 미움, 원망, 욕심, 조바심도 없어집니다. 그것을 느끼는 '나'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혈기, 욕망, 정욕 모두 십자가에서 처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언제 어디서나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기쁜 소식 중의 기쁜 소식은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고 노력했던 나였지만, 그 후에는 기쁨을 숨기기가 어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을 나였지만,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조차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변화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만족이신 예수님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주님 한 분만 내게 있으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마음에서부터 터져 나옵니다. 감사와 감격과 감탄의 삶이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을 때' 일어납니다. 감사와 감격과 감탄의 삶이 '내가 십자가에 죽었음을 믿을 때' 일어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죽은 것이 가장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는 것도,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때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는 1869년 좌절과 낙심으로 선교지 중국에서 쓰러졌습니다. 몸도 지쳤지만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로서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애쓸수록 더욱 거룩하지 못한 자신을 보게 될 뿐이었습니다. 그는 한순간도 예수님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압감 때문에 오히려 너무 신경이 예민해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더 자주 화를 냈고 말도 거칠게 하는 자신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의 시간을 더욱 많이 가졌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믿으려고 애섰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좌절감이 몰려왔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신다."라고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친구 메카시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을 구하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신실하신 분,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네." 그 문장이 허드슨 테일러에게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허드슨 테일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리라는 사실을 포함하여 예수님과 자신이 한 몸과 살과 뼈의 한 지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오, 거기에 안식이 있구나! 그동안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기 위해 헛되이 애써왔구나. 이제 결코 더 이상 애쓰지 않겠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결코 나를 떠나시지 않고 나를 버리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 후, 더 이상 염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지내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으며 또한 부활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허드슨 테일러에게 실제가 될 때 중국 대륙에 놀라운 선교의 역사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날마다 죽는 것! 우리의 승리 비결도 동일합니다. "매일 죽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죽어야 예수님이 온전히 드러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교자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때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순교한 것 같고, 너무 억울하게 순교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죽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내가 구원을 받았고, 나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역사는 이 세상 속에 나타납니다.
게시버넬은 사탄 숭배자였고, 늘 "아빠,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이 교회 수련회 때 예수님을 만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다 보니 학교에서도 사랑하는 친구들을 향해 편지를 쓰고,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999년 4월 18일, 그는 영원히 잠들기 전에 기도하면서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오직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아는 것이며, 그분을 다시금 생명으로 이끈 강력한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며,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고 죽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아는 것임을 나는 발견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 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자들의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사는 자가 될 것이다."
다른 날과 같이 도서관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공부하던,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리틀톤 시에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고, 그날 그 자리에서 13명의 학생이 사망했습니다. 그중 한 소녀,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캐시 버넬이 있었습니다. 총기를 든 무장한 학생들이 도서관에 총을 쏘면서 들어왔습니다. 개시 버넬은 두려운 마음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총구를 내밀면서 물었습니다. "너 하나님을 믿냐?" 총구가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교에서 유명한 사탄 숭배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죽는 것입니다. 하지만 캐시 버넬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난 하나님을 믿어(Yes, I believe God)!" 이 학생들은 이렇게 비웃으며 총을 쐈습니다. "아! 그래? 그럼 네가 믿는 하나님한테로 가버려!"
어리고 착한 한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순교 사건 이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던 미국의 십 대들이 주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미국 청소년들은 "Yes, I believe God"이라는 구호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어디에서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냈습니다. 학교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부어졌습니다.
그것이 미국 전역에 퍼져서 학교마다 기도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See you at the pole" 운동입니다. 매일 아침 학교에 있는 국기 게양대 앞에서 학교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 모임이었습니다.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See you at the pole"운동이 일어나면서 십 대들 안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2007년 4월 18일 수요일 13시경 터키 중동부 도시 말라티아에 있는 기독교 출판사를 기습한 5명의 난폭한 무슬림이 독일인 선교사 1명과 현지 기독교인 2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세 전후의 무슬림들이 수요일 아침 10시경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출판사를 침입해 준비된 권총으로 위협하고 손발을 묶고 3시간여 칼로 심한 고문을 한 후 3명을 차례로 칼로 목을 베는 끔찍스러운 살해를 저질렀습니다.
독일 출신인 틸만 선교사는 1961년생으로 지난 1998년 터키로 돌아와 9년여간 말리티아를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3시간여의 심한 고문 후 156군데의 고문 흔적을 남기고 목이 무참하게 잘린 채 발견되었습니다. 부인 수산나 선교사는 딸 마샬(13)과 미리암(8) 그리고 아들 누카스(11)와 함께 ATV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들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저들이 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9년 반 동안 터기 말라티아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평범한 삶을 살려고 이 나라에 왔습니다. 터키인들이 독일에 와서 회교인으로 사는 것처럼 우리도 터키에서 기독교인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믿습니다. 저의 남편은 헛되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죽은 터키인들의 피도 헛되게 흘려지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터키와 말라티아를 이하여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남편이 말라티아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으로 여기서 살고 있고, 아이들은 여기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에 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내 옆에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습은 그렇기 때문입니다. 때로 무덤에 다녀오곤 할 것입니다. 어린 딸들은 꽃을 아빠의 무덤에 놓아두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돌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네자티 목사님은 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죽을 것이다." 또한 네자티 목사님의 부인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정말 의미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네자티는 하나님에게로부터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는 그와 인생을 같이 했다는 것 자체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영광의 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영광에 합당하게 살 것입니다."
우우르 형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의 참 사랑을 전하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에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탄불 관장에 수백 명의 터키 그리스도인이 나와서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도 죽여라!" 하면서 행진했습니다. 위의 두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어떤 일을 이루셨습니까? 예르분의 삶에서 '나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다섯 가지를 적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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