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①예수님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②그동안 내 삶의 주인 노릇하던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③'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은 믿음의 완성이 아니라 세ㅖ 받을 때의 믿음입니다. 곧 믿음의 시작입니다.
<정말 신실하게 삶을 사신 故 김대영 권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의 삶은 <예수는 나의 힘이요>라는 책을 통해서 감동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안산광림교회 때부터 뵈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사셨던 삶을 모두 곁에서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분이 중국의 나병환자를 섬기는 사역을 준비하시다가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선한목자교회 경비로 근무하셨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사람이 많이지면서 중요한 것이 교회를 관리하는 것임을 하나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처음 들어와서 보는 교인이 경비원이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돌봐야 하는 귀한 자리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김 권사님은 목사님을 찾아가서 경비원이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2년 동안 여러 가지 마음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경비를 하면서 경비원들을 섬기고, 교인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비원으로서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이 다 끝나갈 때쯤, 자신의 몸에 대장암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김 권사님은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나병환자 섬기는 사역에 관심이 많았던 김 권사님은 한편으로는 나병이 옮기면 어쩌나, 그래서 죽음을 맞이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무의식속에 존재하고 있어서 나병환자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잘 돌보지 못할까 바 마음의 걱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대장암인 것을 아니, "어차피 죽을 생명이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들을 잘 섬길 수 있겠구나. 이것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놀라운 축복이구나!"라고 믿어졌답니다. 그리하여 대장암 3기 때, 김 권사님은 중국으로 나병환자를 돌보러 가셨습니다. 두 달 정도 나병환자들을 섬기다가 펴ㅖ혈증으로 다시 귀국하셔서 예배에 참석하셨기에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권사님! 힘드시지요?" 그때 김 권사님은 제 손을 꼭 잡으면서 고백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 신실하세요. 너무 감사해요. 행복한 사람을 보듯이 저를 보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죽음으로 넘기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예수님에게 돌아오게 하는지 故 김대영 권사님의 삶을 통해 늘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이를 크게 놀라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3단원에서 살펴봤듯이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역사는 일어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실패로 얼룩져 있을까요?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한복음 2:1-11). 위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디에 가셨는지 찾아보고,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가나 혼인잔치에 가셨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요한복음 21:1-5). 예수님이 디베라 호숫가에 가셨는데,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는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셨던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은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못 잡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있다고 하는데, 내 안에 기쁨도 없고, 여러가지로 실패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하나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앞에 두 가지 이야기를 보면 그 문제를 알 수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예수님이 함께 계셨지만,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셨습니다. 갈릴리 혼인잔치에서는 손님이셨고, 디베랴 바닷가에서는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는 구경꾼이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고, 나의 삶에 손님, 구경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너무 강하게 살아 있어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도 아무런 역사도 행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사도 바울은 내 안에 내가 살지 않고, 나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하였습니다.
위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 안에서 나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놀라운 진리였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 오신 예수님은 절대로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단원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절망스러운 죄인인지를 발견하였습니다. 2단원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존재적 죄인인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럽고 더러운 우리 마음에 성령님이 오신 흔적을 3단원에서 살펴봤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라고 고백할 때 이루어집니다.
죄가 우리의 생명에 돌아왔습니다. 내가 곧 죄이고, 죄가 곧 나입니다. 나와 죄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생명과 바꾸는 일입니다. 나의 죄된 생명을 예수 생명으로 바꾸는 것이 그 모든 진리가 내게 일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곧 십자가는 예수님의 생명과 나의 생명을 바꾼 자리이며, 십자가는 예수님과 함께 나도 함께 죽은 죽음의 자리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부터 믿음의 놀라운 역사들은 일어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에게서 예수님으로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세례받을 때에는 세례받는 사람을 물속에 완전히 잠기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죽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의 세례도 머리 위에 물을 뿌립니다. 동일한 의미입니다. 물이 완전히 머리 끝까지 잠겼다는 것입니다. '나이 죽음'입니다. 세례는 나의 죽음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때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 그 사람을 물속에서 일으킵니다. '나는 죽고, 이젠 세례를 베푸신 에수님으로 사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세례받은 사람을 집례하시는 목사님이 일으켜 세웁니다. 동일한 의미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생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3, 4).
우리 안에 들어온 죄를 죽음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의함, 악함, 음란함, 미움, 시기. 원망, 강팍한 마음이 죽음을 통해서만 해결이 됩니다. 죄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죽음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함이라"(고린도후서 4:10, 11).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과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이 필요합니다.
<학국 교회사의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청년 시절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시장에서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물을 떠 놓고 비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김익두는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깡패 청년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죽었다는 김익두가 버젓이 시장에 시커먼 책 하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김익두 목사님을 시험하려고 길을 지나 갈 때 물통에 있는 물을 그에게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김익두 목사님이 물을 툭툭 털고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네가 받는구나!"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다음 찬양을 알고 있으면 조용히 불러 봅시다. 모른다면 천천히 5번 읽어 봅시다. "십자가 십자가 그 위에 나 주었네. 그 사랑 내 속에 강같이 흐르네. 그이 생명 내속에 그의 능력 내 안에 그이 소망 내 삶에 나의 삶 주의 것. 십자가 십자가 그 위에 나 죽었네. 그 사랑 내 속에 강같이 흐르네"(박지영 작사/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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