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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었을 때..

예림의집 2019. 9. 20. 15:40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나름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고자 했는데도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나는 늦은 밤 교회를 찾아서 하나님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 좀 그만 때리세요!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하라는 대로 다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신학 안 한다고 했잖습니까? 도대체 외 그렇습니까?" 바락바락 악다구니를 해대며 하나님에게 대들었습니다. 예전엔 나를 부드럽게 대하시는 하나님에게 익숙했지만, 고통 중에 성경은 내게 거친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뾰족한 가시가 되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찌르심에 내 안의 검은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그땐 몰랐습니다. 아프다고 악다구니만 쳤지, 그것이 내 속의 어둠을 드러내고 몰아내는 수술이자 치료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내 안의 죽은 피가 생명의 피로 수혈을 받았습니다. 죽음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어둠이 편하고 빛이 싫은 날이 있습니다. 고통은 죽음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고난 당하는 자들은 보물을 찾는 것보다는 죽기를 더 바라다가 무덤이라도 찾으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욥기서 3:20-33). 욥의 고백을 읽으며 큰 위로를 받습니다. 욥도 죽고 싶었구나, 보물보다 무덤을 발견한 것이 훨씬 기뻤을 정도로 죽고만 싶었구나. 물론, 어찌 나를 욥에다 비교나 할 수 있을까. 그저 고통을 대하는 욥의 태도를 보면서 닫혔던 마음 문이 열리고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이 던지는 말에 항거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슬픔을 너그럽게 봐주는' 세상이 아닙니다. 남의 고통을 너그럽게 품어 주기보다 섣불리 원인을 분석하려 하고 쉽사리 해결 방법을 제시하려 합니다. 고통당하는 자의 친구가 되기보다 비평가나 평론가가 되려 합니다. 그러나 고통으로 말미암은 죽음이 가져오는 선물이 있습니다. 

나의 '깨어짐!' 이전에 자신을 긍정하던 삶이 불확실로 이어지고 단단했던 자아가 고통 중에 깨어집니다. 아픔이 몰고 오는 죽음은 '자난 날 살아온 삶과 세상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립니다.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영혼의 어두운 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두려움과 그로 말미암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꾸며진 자아'가 벗겨지고, '참된 자아'를 입습니다.

죽음을 그리워함이 존재의 자유에 이르는 길임을 욥을 통해 찾았습니다. 고통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나의 '느낌'은 사라지고 그분을 '신뢰'하는 지혜를 얻습니다. 그분을 신뢰하는 만큼 자유함을 누립니다. 내가 믿는다고 존재하고 안 믿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언제나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반석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