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어를 다른 본문에서 묵상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묵상하는 자로 태어났습니다. 묵상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매일 만나는 동안 경외감이 일어납니다. 그 자리가 바로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으로 또 사도행전의 고넬료가 생각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사도행전 10:2). 경건한 삶은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와 구제가 균형 있게 나타나게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구제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도와 온 가족의 하나님 경외함이 드러납니다. 즉, 자신의 확고한 믿음과 삶이 가장 친밀한 사람들 속에서 나타납니다. 경건은 우리로 숨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게 만듭니다.
고넬료가 그런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으로, 아주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심지어 집의 하인들도 경건했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친구들을 초청하자 친구들이 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유쾌합니다. 대인관계가 좋습니다. 집 안의 하인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경외감, 경건함은 인간관계에서 분리나 차별이 아닌, 친밀하면서도 구별된 관계를 맺습니다.
경건한 경외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말'을 형성합니다. 기도와 구제가 분리되지 않게 합니다. 고넬료는 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가족과 종들을 잘 다스립니다. 경외는 머리에서만 작동하는 말이 아니라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경외는 머리에서만 작동하는 말이 아니라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과의 사귐으로도 나타나고, 그들을 복음으로 초청하기도 합니다.
고넬료의 행동, 야곱의 수고, 아브라함의 봉헌은 모두 경외에서 나온 행동들입니다. "고넬료야..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배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사도행전 10:31,32). 홀로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난 고넬료는 하나님의 종을 초청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렇듯 묵상과 공적 선포, 묵상과 가르침의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고넬료는 이 모든 것의 모범처럼 보입니다. 고넬료의 삶에서 볼 수 있듯, 같은 단어를 다른 본문에서 묵상할 때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그 단어의 역동성을 생생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돈을 두려워하는 자는 돈을 우상으로, 건강을 두려워하는 자는 건강을 우상으로 섬겨 그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노예가 아닌 인간이 됩니다. 하나님을 묵상할수록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갑니다. 로마의 군인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들은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묵상에서 일어나는 경외감은 우리를 순종으로 이끌고, 수고로 이끌고,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경외가 자라 가는 인생은 묵상에서 성공하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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