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경외'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한 단어를 통해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열리고, 그 하나의 단어가 마음에 깊게 새겨져 잊히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 한 조각의 단어가 여태껏 꽤나 고급한 양탄자처럼 보였던 내 삶을 갈기갈기 찢어서 휴지조각처럼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이게도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향해 하신 말씀 중 '경외(敬畏)가 나에게 그런 단어입니다.
창세기를 묵상해 나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내 삶을 뒤집어 놓은 단어 '경외'를 만났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세기 22:12).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은 것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할 때도 아니고, 재산과 가축이 많아서 분쟁하는 목자들로 인해 조카 롯과 쿨하게 헤어질 때도 아닙니다. 오랜 붙임으로 고통의 사간을 보낸 뒤에 얻은 아들 이삭이 장작 짐을 지고 사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아브라함이 순종했을 때 들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경외를 불안감에서 찾으려는 경우가 잦습니다. 하여 공포심을 경외로 이해하려 합니다. 아닙니다. 경외는 '아끼지 않고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경외는 믿는 순간 얻는 것이기보다. 온갖 삶의 과정을 두루 거치고 나서 성숙해질 때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당신을 경외하는 줄 "이제야"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대 아브라함의 나이가 대체 몇입니까? 그가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난 지가 언젠데, 가나안에서 살아온 삶이 몇 해인데, "이제야" 아시다니, 하나님은 사람을 인정하는 데 더디신 모양입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삶을 보고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안다고 하십니다. 내가 느끼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을 보고 판단하시는 감정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보고 베푸시는 인정입니다. '제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하나님은 아시죠?'라는 식의 말처럼 어리석고 무례한 말도 없습니다. 예배자가 예배 받으시는 분을 향해 '우리가 주님을 경외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는 있으나, 그분이 '너희가 나를 경외하는 줄 내가 안다'라고 인정하실지는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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