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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시는 사람

예림의집 2019. 3. 19. 12:07

돌보시는 사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이사야서 66:1-4).


이 시간 “돌보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순간도 돌보아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장 귀한 복 중의 하나가 에벤에셀입니다. “에벤에셀” 이란 “여호와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라는 뜻입니다.

에벤에셀이라는 말이 나온 동기가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때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 하에 많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사무엘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멀리한 죄 때문이라고 믿고 백성들로 미스바에 모이게 해서 회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는데 이때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레를 발하시어 멀리멀리 물리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비를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불렀습니다. 진실로 회개했더니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셨습니다. 이 진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특별 은총으로 돌보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여호와의 성전에 나아와 제사를 드리면서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그러므로 먼저 예배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1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 말씀은 성전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요, 3절부터는 여기서 드리는 제사를 말씀합니다. 성전은 예배하는 곳입니다. 기도하는 집입니다. 사 56:7에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려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하셨습니다. 성전은 만민이 예배하고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 50:5에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셨습니다. 예배 안 드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맞아요. 아무리 믿음 있어도 예배 안 드리면 세상 사람 되고 말아요. 아무리 심령이 갈급해도 예배 안 드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 심령에 은혜가 임합니까? 헌법으로도 장기 결석하면 교인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예배할 때 복을 주십니다. 출 20:24에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히 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보세요. 왕상 3:5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예배가 기본입니다.


2. 마음이 가난해야 돌보십니다.

2절 중반에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만 그 자세가 중요합니다. 여기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나는 연약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하셨습니다.

다윗처럼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니이다”(사 42:1)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것으로 채울 수 있다고 아쉬울 것이 없는 태도로서 예배하면 안 됩니다. 천국은 마치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아서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 것처럼 하나님이 나의 전부여야 합니다.

하나님 아니고는 살 수 없다는 그 심정이 아니고는 예수 믿지도 않을 것이고 예수 믿어도 갈급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할 때 하나님께 한 발 세상에 한 발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다 드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기도가 나오고 감사와 눈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했습니다.


3. 통회하는 사람을 돌보십니다.

“심령에 통회하며” 여기 통회란 죄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슬퍼하며 회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정말 큰 어려움 당하면 세상 무엇도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위로할 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기 형편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애통할 일 같으면 애통하시고 울 일 같으면 우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살려주셨듯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울면 삽니다.

먼저 하나님 잘 섬기지 않았던 것, 이웃에게 잘하지 못했던 것, 나를 높이고 교만했던 것, 여러 가지의 욕심에 사로잡혔던 것들을 통회해야 합니다. 이사야 당시 사람들은 우상숭배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우상인 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거울을 비추어 보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잘못을 깨닫는 것이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귀합니다. 이것은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말씀도 중요하고 예언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전 14:24-25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했습니다.

시 97:10-11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했습니다. 내 영혼에 복되지 않을 온갖 세상 쓰레기들 다 버리고 하나님만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4. 말씀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십니다.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이 부분을 새 번역 성경에는 “나를 두려워하고 내 말을 따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간략히 말하면 하나님을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그 존경은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고 좋으시다고 무시하면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에서도 부인이나 자녀들이 능력이 있어도 남편이나 아버지를 무시하면 그 가정은 복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려고 다가오셨다가도 물러가버리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질서가 무시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없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에 예수 잘 믿는 백사겸이라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 지역에 외국선교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교회당을 짓게 되었는데 재정이 부족해서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백사겸은 1,000여 평 되는 자신의 땅 전부를 팔아서 교회당을 완성했습니다. 땅 없으면 대대로 머슴 살아야 합니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이제는 뭘 먹고살래요? 먹고 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백사겸을 교회의 사찰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평양에 데려다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아들은 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파커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신학교와 프린스턴 대학원을 졸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일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신학박사 인문학 박사 법학박사 문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귀국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연세대학교 총장이었고 6.25 때 우리나라 문교부 장관을 지낸 백낙준 박사입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확신하고 성령의 인도 따라서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5. 그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까요?

4절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되 바른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 잘 드리면 복을 받고 예배 잘 드리지 못하면 받지 못합니다. 이 원리는 가인과 아벨 때부터 태초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찬양하며 예배하던 다윗은 시 46:1-3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예배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예배하되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는 것을 회개하고 멀리하며, 우리의 심정을 온전히 통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그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이 함께 하시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