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심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글을 쓰고 저장을 하려는데 자꾸 에러(error)가 났다. 여러 번을 반복해도 되지를 않았다. 약간 짜증스러워진 나를 발견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순간 하나님께 부탁을 드리지 않고 있니?" "사소한 것이라서? 아니면 네게 능력이 있으니 네 힘으로 해보려고?" 순간적인 생각이었지만 나의 불신앙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지극히 작은 것에도,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없이 크고 광대하신 분이시지만 지극히 섬세하시고 작은 것 하나라도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신데 나는 작은 것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제 죽마고우 친구 장로와 오랜 시간 통화를 했었다. 같은 문제인데 나의 생각하는 바와 그 친구가 생각하는 바는 정 반대였다. 해결하는 방법과 보는 시각 또한 달랐다. 우리의 생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내 생각만 옳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남을 수용할 줄 아는 도량이 필요하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생각의 차이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이란 무엇인가?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하려는데 틀린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인데 하나님은 왜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하고 우리의 심기를 하나님 앞에 드러 내놓는 것이 불신앙이다.
적어도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고 지혜의 원천이시며 완전하심을 믿는다면 나의 생각을 접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보이는 큰 것만 신앙적 행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극히 작은 우리의 생각마저도 신앙적 이어야 한다. 작다고 하나님은 무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섬세히 들여다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교회 내에도 보지 못하는 작은 일들이 너무나 산재해 있다. 비록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 작은 것이라도 그곳에 눈길을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장은 우주 곳곳에서 쉼 없이 박동하며 숨 쉬고 계신다. 큰일을 해야 위대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가 위대한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섬세하심을 피부로 느끼고 영적인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죽은 자는 느낄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자는 영적인 세계 속에서도 느끼며 반응한다. 우리 근원의 원천이신 하나님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분의 마음과 생각을 깨닫고 반은 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나의 세포 하나하나를 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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