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가르시고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라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라"(이사야 64:1-8).
최근에 믿음을 버린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어?’라는 귀에 익은 불평을 들었습니다. 누구나 뉴스에서 폭력 기사를 읽거나 우리 자신이 큰 슬픔을 겪을 때 이처럼 괴로운 질문을 한 번쯤은 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간절함처럼, 내 친구의 괴로움은 자기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바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도 이런 상황을 뼈저리게 겪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이스라엘을 함락하여 철권으로 그들을 쳐부수고 예루살렘을 연기 자욱한 잔해의 도시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의 암울한 의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이사야서 63:11-15) 그러고 나서 정확히 바로 이 지점에서 이사야는 담대히 하나님이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기를”(1절) 기도했습니다. 고통과 슬픔에 싸인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의 의심이나 어려움은 뜻밖의 선물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알게 해줍니다. 우리는 지금 놀랍고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늘을 ‘확실히’ 가르시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찢기고 부서진 몸을 내주시면서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매우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께 해야 할 어떤 질문이나 의심이 있습니까?
"하나님, 제 삶을 제가 관리하여 답을 얻을 수 있는 척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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