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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자

예림의집 2018. 12. 28. 19:16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3:18-19).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자”라는 제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우주입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하늘에 안개처럼 뿌연 것들이 다 별들인데 은하계만 해도 그 수효가 2,000억 개라고 합니다. 별과 별 사이만 빛의 속도로 이동해도 대략 4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빛의 속도로 은하계를 가로지르는데 만도 10만 광년, 그리고 은하계에서 이웃 은하계까지 이동하는 데는 17만 9천 광년, 그런데 성경에 하늘들의 하늘이라 한 것처럼 이런 은하계가 수천수억이 존재한다고 하니 이 우주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라도 되십니까?

그런데 이보다 더 크고 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개혁신학자 존 스토트 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온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할 정도로 넓고, 영원토록 지속할 만큼 길고, 가장 타락한 죄인에게까지 미칠 정도로 깊고, 그를 하늘로 올리울 정도로 높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8-19절)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임합니다.

여기 충만이란 특별히 성령을 지칭하는 용어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라 했으니 그 은혜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호 6:3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1.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고후 5:15에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몸까지도 아끼지 않고 희생하신 그 사랑을 안다면 어찌 자신을 위해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거미 중에 염낭거미가 있다고 합니다. 염낭거미 어미는 번식기가 되면 나뭇잎을 말아 나뭇잎을 말아 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알을 낳고 자기 몸을 새끼들에게 먹이로 줍니다. 거미 새끼들은 어미의 몸을 뜯어먹고 자라납니다.

가시고기도 그런 고기입니다. 가시고기 암컷이 둥지에 알을 낳으면 수컷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둥지를 지키기 위해서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벌이고,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한순간도 쉬지 않습니다. 새끼가 알에서 부화되면 자라는 동안 수컷은 먹지도 않고 지키다가 둥지 앞에서 죽어 자기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줍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생물을 만드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유대 땅 베들레헴이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것도 우리 인류를 위해 우리의 생명의 떡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말이 먹는 구유에 나셨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요일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2. 이 사랑을 깨달으면 이웃을 위해서도 살아가게 됩니다.

요일 4:11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갚을 길은 그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멸망할 죄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큰 빚을 졌습니다. 미국에서 일찍이 대학을 졸업하고 충북 제천에서 1천여 명의 버림받은 한국 고아들을 양육했던 제인 화이트 여사가 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버림받은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하여 영아원을 세우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733명의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녀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어찌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서 이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생을 버렸습니다.” 법원이 우리를 강제로 사회봉사시키면 억울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보다 더 한 일도 자진하게 됩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이 사랑을 알았기에 환자의 고름을 빨면서 사랑할 수 있었고, 스데반 집사도 이 사랑을 깨달았기에 자기를 돌로 치는 원수들을 위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 자신이 변화됩니다.

고후 5:13-14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했고, 롬 14:7-8에도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바울이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 크리스쳔들이 이 사랑으로만 무장한다면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는 시간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눈물로 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교회와 나라와 민족과 세계선교사를 위해서 정오마다 기도하는 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시 122:6-8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한 것처럼 교회와 나라가 평안해야 평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펜실바니아에 피터 밀러의 실화입니다. 이 분이 목회하던 교회의 이웃에 교회를 핍박하고 목사를 헐뜯는 악질 이웃 한 명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살인죄를 짓고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이 소식을 듣고 워싱턴 장군에게 달려가 사형을 면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끈질긴 요청에 목사님에게 워싱턴이 물었습니다. “왜 살려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저 사람은 나의 가장 큰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감동을 받고 사면장을 써주었습니다. 목사님은 또다시 25km 떨어져 있는 사형장까지 달려갔습니다. 마침 교수대에 묶고 있었습니다. 그 살인범은 목사님을 보자 말했습니다. “저 늙은 목사가 내가 교수형을 당하는 꼴을 보고 기뻐하려고 오는구나!” 이때 목사님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사면장을 보여주며 원수를 살려 주었습니다.


4.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립니다.

요일 4:8에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나를 보면 도망가기 바쁩니다. 슬픔도 나를 보면 도망갑니다. 불행도 행복으로 변하고 고통도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천국을 가서 스데반 집사를 만나 “집사님 돌에 맞아 얼마나 아프셨어요.” 묻자 “그리스도께서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고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하더래요.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알게 될까요? 14절부터 보면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면서 그 사랑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 사랑을 깊이 깨닫고 몸에 성흔이 생겼다고 합니다. 프랜시스도 몸에도 거룩한 흔적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주님을 사랑했기에 그들에게 성령의 항구적인 충만함과 임재로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나 아직도 완악한 심령이라면 진실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대접 재앙이 나오는데 그 강력함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대접이란 "내가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 하셨듯 고난을 가리킵니다. 이 대접의 연단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며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기 전에 바울처럼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신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기 생명을 아까지 않고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깊이 알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에게 충만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웃을 위해 살고,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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