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순교자의 신앙 따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사도행전 7:54~7:60).
기독교는 마치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도 같습니다. 순교의 피가 뿌려져야 비로소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합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터툴리안도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오늘과 같은 부흥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순교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침묵]은 순교가 '쉽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행동이라는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지요.
본문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순교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깊은 감명과 함께 큰 도전을 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박해자들을 용서하는 모습이 그러합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55절). 왜 그랬을까요? 얼굴을 보면 용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었을까요? 하늘을 우러러보았기에 자신의 영혼을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하고(59절), 박해자들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60절)
그런데 순교는 '죽는 순교'만이 다가 아닙니다. 순교에는 '사는 순교'도 있습니다. 순교자의 신앙 따라 신앙의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 말입니다. 원수라도 용서하며 '사는' 것 말입니다. 사는 순교도 죽는 순교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교의 삶을 삽시다. 우리 자녀들도 순교의 삶을 살도록 권하며 가르칩시다. "순교자의 본을 받아 내 믿음 지키고, 순교자의 신앙 따라,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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