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 이웃에게 집중하는 것
본문은 여리고 도성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맹인 바디매오가 지나가는 예수님을 향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외침을 단순히 시끄러운 소리로만 생각했습니다. 48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한 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이때 49절에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청의 자세입니다. 경청은 이웃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머물러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경청은 온 몸, 온 눈, 온 마음, 내 온 존재를 동원하여 상대방에게 나 자신을 내어 주는 행위입니다. 한문으로 '듣는다'라는 말 '청(聽)' 자를 보면 좌측에 귀를 나타내는 '이(耳)' 자가 있지만, 우측에는 열 '십(十)' 자와 눈 '목(目)' 자, 그러니까 열 개의 눈과 그 아래 마음 '심(心)' 자가 있습니다. 모든 눈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주목하고 마음을 내어 주는 일이 바로 '듣는 일'입니다.
한 심리학자는 오늘날 가정문제의 대부분은 배우자들, 특히 남편들이 경청만 배워도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남편이 집에 와서 여자가 남자보다 하루에 갑절이나 더 많은 말을 하고 산다는 말을 전하자 아내가 "왜 그런지 아세요?" 하고 물었답니다. 이유를 묻는 남편에게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남자들은 우리 아내로 하여금 똑같은 소리를 두 번씩 하게 만들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무라고 했을까요? "당신 지금 무라고 했어?"
이렇게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청은 진지한 집중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경청할 수 있습니다. 해답은 결국 사랑입니다. 본문에서 왜 예수께서는 길을 가다가 머물러 서셨을까요? 그분에게 호소하는 맹인에게 관심이 갔기 때문입니다.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째 의무는 경청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은 이웃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나는 이 맹인이 큰 소리가 아닌 작은 신음소리로 외쳤어도 예수님이 여전히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 성가에서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지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문의 맹인처럼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그분이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심을 믿기 때문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말을 경청하고자 한다면 이웃을 바라보고 그 앞에 머물러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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