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사역†/강한별

세겜 대학살 사건(창 34:1-31)

예림의집 2018. 9. 28. 16:09

세겜 대학살 사건(창 34:1-31)


"제 삼일에 미처 그들이 고통 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성을 습격하여 모든 남자를 죽이고"(창세기 34:25)


얍복 강가에서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살길을 열어주셨지만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살만해지자 야곱은 과거 가나안을 떠날 때 드렸던 벧엘 서원 (28:20~22)을 잊은 채 계속 세겜에 머무르는 영적인 나태함을 보여줍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지 않습니까? 급할 때는 매달리다가도 삶이 나아지면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나태해집니다. 이때 하나님은 고난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서지요.

즉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추장인 세겜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자 디나를 사랑했던 세겜 부자가 야곱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해옵니다. 그러나 불타는 증오심과 함께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야곱의 아들들은 살의를 숨긴 채 혼인 조건으로 세겜성 모든 남자들의 할례를 요청합니다. 그들에게 복수할 계락을 세운 것입니다. 세겜 부자의 요청과 설득에 의해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시행합니다. 

사실 할례의식 자체는 당시 고대 근동지역의 보편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양가의 결혼 후 야곱 집안과의 결연을 통해 그들의 경제력을 흡수해서 부족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세겜 족속의 계산도 한몫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로부터 3일 후 할례받은 자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급습해서 칼로 성안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여인과 자녀들을 사로잡고 모든 가축들을 탈취하는 약탈이 자행됩니다. 참으로 무서운 보복입니다. 

왜 이 같은 참상이 저질러졌습니까? 거짓말쟁이 야곱이 새사람인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지만 세겜에 안주하면서 구속사의 주역으로 부름받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고 육적 안일함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딸 디나는 세상에 호기심을 지닌 채 스스로를 범죄에 노출시키는 무절제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야곱의 아들들은 거룩한 할례의식을 자신들의 추악한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사실 세겜의 과실에 비하면 그들의 보복의 정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아무리 동생의 수치를 갚고 언약 가문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비신앙적이고 비윤리적인 악행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후일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의 저주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사건의 도화선이 된 분노와 혈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분노와 혈기는 가증스러운 거짓을 낳습니다(13~17절). 증오와 살인을 낳습니다(25~29절). 그리고 또 다른 보복의 위험성을 낳습니다(30절). 그래서 분노와 혈기는 성도들을 쉽게 넘어뜨릴 때 사용되는 사탄의 무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분노와 혈기가 없습니까? 이 때문에 큰 위험에 빠졌던 적이 있지나 않았는지요? 

말씀과 기도의 생활에서 떠나면 누구든지 이 같은 분노의 함정에 빠진 채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귀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추악한 인간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변함없이 이어집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 사건을 통해 영적으로 침체되었던 야곱을 각성시켜 구속사의 주역으로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 자신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로 야곱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구속사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택하신 자들은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의 매를 드셔서라도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우리 모두 눈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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