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교의신학

자연과 은혜

예림의집 2018. 9. 18. 15:36

자연과 은혜


계시는 은혜의 방식으로 왔습니다. 특히 특별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호의로 왔습니다. 즉 은혜는 죄에서 치료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은혜는 자연의 완성과 앙양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자연과 은혜에 대해 이해를 달리합니다. 본래 자연이 고유한 존재로 있었고 그 후에 은혜가 추가적으로 와서 자연을 보충한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자연을 보충한다는 말입니다. 

자연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 아직 불완전하고 본래적 존재보다 저급한 상태에 있어서 자연이 그 본성대로 되기 위해 은혜가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은혜가 추가적으로 와서 자연을 보충하고 또 앙양하여 피조 상태에서의 자연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 피조 상태를 능가하는 상태, 곧 신적 존재에까지 동참하게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에 따르면 은혜는 죄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립합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에 의하면 은혜는 자연을 보충하고 앙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회복합니다. 은혜는 본래의 자연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지 새것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구속이요, 자연 곧 창조를 회복합니다. 구속은 이미 있는 것을 돌이켜 살려내는 것이요, 새 창조가 아닌 재창조입니다. 은혜는 죄를 제거하여 자연을 회복합니다.

로마 가톨릭에 의하면 은혜의 역사는 자연의 회복이 아니라 보충과 앙양으로서 구원 과정의 종국이 피조물의 수준을 넘어서 신화(新化) 하는 것입니다. 신 되기가 구원 과정의 종국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하나님의 존재의 통보입니다. 종말에 인간은 영혼의 지성적 부분이 신화하여 하나님의 본질을 직관합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에 의하면 은혜는 신화가 아니라 창조의 회복입니다. 피조물의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서 하나님 섬김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은혜를 입어 영화되어도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말에서 구속된 상태가 영화에 이르러도 피조물이 한계 안에 머무르고 하나님의 존재에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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