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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멍에

예림의집 2018. 9. 11. 12:09

예수님의 멍에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멍에란 로마 군인들의 갑옷에 붙어있는 장착물이 아니라 단순히 동야의 농부들이 사용하는 "마구" 혹은 소의 멍에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문자 그대로 목공소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단순한 멍에였습니다. 주님은 부드러운 멍에와 거친 멍에, 그리고 잘 맞지 않는 멍에와 잘 맞는 멍에의 차이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멍에의 차이는 짐승도 알 수 있었습니다. 거친 멍에는 짐승에 상처를 입히고 짐의 무게를 가중시키지만 유익한 멍에는 고통도 주지 않았고 짐을 지는 수고도 덜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멍에"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것, 즉 그가 홀로 져야만 하는 독특한 고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 모든 인간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고 가야 할 삶이라는 보편적인 짐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겪는 삶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통 때문에 녹초가 되어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실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삶이 비극이고 시련이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생의 짐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처럼 해보아라. 삶을 나처럼 받아들여라. 삶을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라." 즉,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쉬워질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멍에는 쉽고 어깨에 꼭 맞아서 짐이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저야 할 짐의 책임을 주님이 면제해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 짐을 견딜 만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인간의 삶의 무게를 줄여 주는 가장 행복한 삶을 위한 처방입니다. 사람들은 조잡하고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세상의 일과 스트레스에 자신을 매이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멘 멍에는 낡아빠진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거칠고 잘 맞지도 않는 명에를 목의 가장 민감한 부분에 맨 채 참고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민감한 부분을 계속 자극할수록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쓰라리고 비참한 곳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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