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350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혼자만의 정전
정전의 날.
TV, 라디오, 핸드폰도 없는 날을
선포해 보세요.
전화기 코드를 뽑고,
촛불을 켜고,
핸드폰을 비행모드로 해 놓고,
책을 읽거나 얘기를 나누어 보세요.
시끄러운 소리도,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도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밤새 하나님과
도란도란 얘기해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사랑이란..
사랑이란 가슴이 뛰고, 떨리고, 민감하고, 살아있다는 특징들이 다 결합된 것 그 이상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이 같은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의지를 자극하고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성품에 사랑이 자리 잡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일서 4장 19절의 말씀을 봅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사랑함은"이지 "우리가 그를 사랑함은"이 아닙니다. "그가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다른 사랑을 사랑하는 결과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그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품으면 우리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거울 앞에 서서 나의 인격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유하신 그분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랑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사랑함으로 그분처럼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완전한 인격과 완전한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신 주님의 그 위대한 희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분과 같아져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은 낳습니다. 그것은 귀납적인 과정입니다. 쇳조각을 자석에 갖다 대면 그 쇳조각에도 얼마 동안 자력이 생깁니다. 잠시 갖다 대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자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쇳조각을 아예 자석에 붙여 놓으면 그 쇠는 똑같은 자력을 갖게 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마음속에 성령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분이 삶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성품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원인이 구비된 자에게 결과가 따르는 원리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에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 12:1-3).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라디아서 3: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라디아서 3:28, 29).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하신 직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말씀을 제외하면, 우리는 복에 대해 자주 듣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초반에서 계속되던 하나님의 복 이야기는 죄와 반역으로 인해 심판과 저주의 이야기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 때 말씀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을 통해 다시 복을 말씀하십니다. 이 복은 처음에는 아브라함을 향하지만 결국 그를 통해 지상의 모든 열방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복'을 더 넓고 풍성한 성경적 맥락에서 살펴볼 때야 비로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에 다양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물고기와 새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일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를 다시 살펴보면 처음의 두 복 다음에는 "번성하여 바다와 땅에 충만하라"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세 번째 복 다음에는 안식일을 규정하는 성화와 안식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맨 처음에 나오는 복은 생육함, 풍성함,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과 거룩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기초로 창조세계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의도하신 복입니다. 이 복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볼 때, 복을 받은 이들은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알뿐 아니라 그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 속에서 살고자 했습니다. 야곱은 복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이 복을 이웃과의 관계에서 볼 때, 복은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뻗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근거로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복을 받는 사람들의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야곱의 장인이었던 라반은 야곱을 일꾼으로 둔 덕분에 야곱에게 내린 하나님의 복의 영향을 받아 풍성해집니다(창 30:27-30). 보디발은 자신의 종이었던 요셉으로 인해 복을 받습니다(창세기 39:5).
축복받는 사람들은 자신을 넘어서 주위를 변화시키는 복 그 자체가 됩니다. 이를 통해 아브라함의 복이 매우 완전하게 선교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복이 되라'라는 아브라함의 약속 역시 우리의 약속이 됩니다. 곧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복"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번 묵상을 통해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당신의 삶에 어떤 복을 약속하시나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당신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복을 약속하시나요?
"아빠 아버지, 한국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몸 된 한국 교회가 주님의 본을 따라 세상을 향하여 빛을 비추며 본연의 맛을 내는 섬김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소서. 각자가 속한 몸 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지길 기도합니다. 성도들이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빛을 발함으로 복의 진원지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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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영성 훈련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 정수환 목사
스스로를 편안하게 풀어줘야
샬롬! 8월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하루하루 의미 있는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음식재료로 사용하는 양파에도 암수로 구분된다고 하니, 신기한 일입니다. 가로로 더 통통하고 납작한 양파가 암양파고, 길쭉한 것이 숫양파랍니다. 납작한 것이 더 달고 단단하답니다. 그리고 숫양파를 반으로 가르면 가운데 심지가 박혀 있다고 하네요.
인생을 돌아보면, 지금껏 어느 한순간도 만만한 때가 없었습니다. 학창시절엔 ‘반에서 몇 등 했느냐?’로 평가하고, 회사에 입사하면 실적으로 순위를 매겨 승진시킵니다. 성과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고,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는지 여부가 정해집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마음은 한시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당장’ 쉬어야 합니다. 단 5분이든 15분이든, 하는 일을 멈추고 잠깐이라도, 스스로를 편안하게 풀어줘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쉬는 데에도 결심이 필요합니다. “이 과제만 마치면 휴가를 떠날 거야!” “아이가 대학에 가면 나만의 여행을 갈 거야!” 하지만, 삶에는 언제나 숙제 하나가 끝나면 그 다음 숙제가 기다리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가장 부질없는 생각이 “이 일만 끝나면….”입니다. 당신은 지금 업무 고민, 성과 압박, 마감 기한을 앞둔 조바심, 가족걱정을 내려놔야 합니다. 내려놓는다는 말은 마음과 생각을 비우는 걸 뜻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물건도 아닌데 어떻게 내려놓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주 간단합니다.(출처; 좋은생각, 함규정)
우리 인간에게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은 ‘이레 중 하루를 반드시 쉬어야 한다.’고 강제규정으로 정해놓으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출31:15).
Q.T.란 무엇인가?
Q.T.란 무엇인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의 흐름인 경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육체적 경향과 성령의 소유에 의한 하나님의 경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경향에 지배를 받고 있을가요? 하나님의 경향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일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을 경험할 수 있는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 훈련되어집니다. 이것을 위한 시간이 바로 경건의 훈련 QT이다. QT는 아무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조용한 시간을 준비하여 주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Q.T.를 잘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께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 원하는 헌신과 결단입니다. 둘째 우리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은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매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셋째 방해받지 않을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야합하니다. 넷째 다른 경건훈련으로 QT를 대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매일 매일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양식을 받아야 합니다. QT는 매일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QT는 기록하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Q,T.를 위한 준비기도
"QT를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바로 준비기도입니다. 세속의 관심과 육체적 경향으로 꽉 차있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QT는 성령님의 주도하에 있는 시간입니다. 성령님의 주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준비기도의 시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시간으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부임함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짐으로써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를 경험해야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Q.T.의 실마리, 성경 읽기!
QT에서 읽기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읽기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QT에 있어서 읽기는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목적입니다. QT책을 읽지 말고 말슴을 읽으십시오! 성령이 열어주시는 기회가 풍성한 것이 바로 본문을 읽기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을 때 비로서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서 감동이 생기고 그로인해 말씀에 대한 실마리, 종자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읽기는 오늘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일입니다.
묵상이란 무엇인가?
묵상은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방법입니다. 그 방법으로 묵상을 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처럼 성경은 묵상을 중히 여깁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묵상은 차이가 있습니다. 묵상은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성령님이 깨달게 해주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전인격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은 겸손이며 또 기다림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 이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QT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오늘 주님이 본문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확신또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냥 말씀 가운데 안식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 어떤 인간적인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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