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현대신학

기독교 세계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예림의집 2018. 7. 5. 20:06

기독교 세계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한편 기독교 세계관에도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불신자처럼 한 가지를 택하고 다른 쪽을 몰래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다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도 알려지셨고 우리도 하나님에게 다 알려졌습니다. 또한 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 하나님이 하나님을 아시듯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자신의 법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즉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이 절대적 기준이요 궁극적 권위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 아래 두 가지가 조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 자신을 절대적 기준과 궁극적 권위로 삼을 때는 연속성과 불연속성, 즉 이성주의와 반 이성주의는 즉각 모순이 됩니다.

이러한 이성주의와 반이성주의 이원론에 대한 한 가지 좋은 예로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기 위해 우연을 앞세웁니다. 모든 종교들이 우연 속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가 유별나게 절대성을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들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종교다원주의만이 옳은 세계관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를 포함해서 누구도 절대성을 알 수 없다는 반이성주의를 주장하는데, 동시에 모든 종교들의 정당성과 다원성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이것을 자신은 안다는 식으로 이성주의적 주장을 합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실들을 이해하고 이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보편적 원리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체성, 다원성 그리고 객관성이 없으면 여러 사실들을 연결할 수 없고, 구별할 수 없고 한 범주로 묶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어떤 사실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논했듯이 논리는 그 자체가 중립적이지도 않고 그 자체가 스스로 논리의 법칙 혹은 철학을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즉 ‘논리는 사실들을 바르게 서술하고 유효한 결론을 내린다’는 법칙이나 철학은 논리 자체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논리는 논리의 법칙이나 논리의 철학과 다릅니다. 논리는 변치 않는 논리의 철학 혹은 논리의 법칙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논리가 논리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경험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 경험들을 논리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경험들은 변하는 사실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성에 속한 사실들이 아니고 어떤 원리도 아닙니다. 즉 반이성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이성적 사실들을 어떻게 이성적이고 변하지 않는 논리의 법칙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경험들은 변하는 것이고 논리는 일종의 질서를 갖고 있다.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반틸이 지적하는 것처럼 모든 사건들이나 경험들을 우연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믿습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자기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일종의 자율적 질서를 믿습니다. 그 많은 경험들을 이해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질서를 자기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누구에 의해서도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해석되지도 않은 경험들이라 하면서 우연의 서계에 속하도록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율적 질서로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부여하는 것은 자가당착적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