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326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자동차 백미러에서 하나님을
빨간 신호등에서 잠시 뭔춰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백미러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관찰해 보세요.
당신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마음 속에 있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 보세요.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황을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정지 신호등의
그 짧은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 그곳에 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주님을 대하는 바른 태도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세상의 여느 친구처럼 만이라도 생각했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타락자도 없었을 것입니다. 가령 내가 어느 마을에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거기서 친구 몇 명을 사귀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들에게 악수 한 번 하지 않고 작별 인사도 없이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말 한마디 없이 기차를 타고 가버린다면 그들은 나를 단단히 비난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며 소리를 높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타락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혹은 그의 골방에 들어가서 "예수님, 저는 주님을 10년, 20년, 혹은 30년 동안 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주님의 일이 지겨워졌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의 짐은 가볍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세상으로, 이집트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가려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주 예수님!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은 혹시 이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고 들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골방에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고 주님과 대화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분에게서 더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려올 것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한복음 6:68).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사랑의 열매로 구원을 점검하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일서 3:14).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받는데 믿음을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은 당연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은 책망받는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좀 미워하고 싸워도 천국에 가서는 사랑하며 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다가 죽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 땅에 살 때도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천국에서 삶이 이 땅에서도 나타나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22).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24, 25).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일서 3: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성경은 일관되게 우리의 구원이 사랑과 용서와 관계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것이 믿음으로 부족하다는 말입니까? 구원은 분명히 믿음으로 받은 것이고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진정성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야고보서 2:17).
야고보는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도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단순히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로 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일이나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준 일 등은 선행과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그런 행함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야고보 시대에는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느다고 하면서도 핍박이 오니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는 사라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들이 주님을 떠났습니까?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들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참 믿음은 우리를 용서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하신 주님이 내 안에 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정말 믿는다면 용서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믿음으로 변화된 사람의 가장 강력한 증거는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형이 일본 사람에게 맞아 죽는 것을 본 후 일본 사람들을 평생 증오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일본 사람이 네게 지은 죄가 크냐? 네가 내게 지은 죄가 크냐?" 성령 체험 후 그는 자기의 죄를 보는 눈이 열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제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독생자도 주었거늘 너는 왜 일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느냐?" 이 말씀에 그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일본 사람들을 미워했던 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교직을 떠나 일본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십자가 복음에 대한 믿음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요한계시록 2:1-5).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이단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거짓 교훈에 맞서 진리를 수호화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니골라 당의 미혹으로부터 교회를 지켜냈습니다. 진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주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베소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린 데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했던 교회가 어느 덧 차갑게 식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이것저것 다 갖추고 있어도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다 허사라는 것입니다.
지난 2005년 4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모인 자라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한 분이 피를 토하는 공개 회개를 했습니다. "해방 직후 신사참배한 모사들을 두고 마귀당이라고 하고 밥도 같이 먹지 않았습니다. 처음의 뜻은 좋았지만 내가 잘났다고 교만심이 커지고 판단만 하고 사랑은 흐려졌습니다. 평생 나 자신이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았으면서도 가장 무서운 교만 죄를 가지고 함부로 입을 열어 정죄하고 저주했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회개한 자만 간다고 했습니다. 이 교만했던 죄와 부족한 종이 바로 죽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길 바랍니다." 그는 목이 멘 체 고백을 마쳤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믿은다면 사랑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안되고, 용서가 안 된다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복음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사랑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핵심은 에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사랑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이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붙잡고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우리 안에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한번은 큰 회사의 대표이사가 교회에 등록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저와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약속한 날 저녁에 약속 장소로 차를 운전해 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고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도대체 제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엇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것라도 있나요?" 그러자 갑자기 제 마음에 한 성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교회에도 나오다 말다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시장에서 옷가게를 했는데 최근에 부도를 내고 경제사범 신사가 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잇었습니다. 전는 전도사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지만 교회의 여러 가지 일로 너무 바빠서 면회를 가지 못했습니다. 순간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는 회사 대표이사를 만나는 일에는 시간을 그렇게 잘 내면서 그 여 성도를 면회 갈 시간은 없었느냐?" 마태복음 25장 41-43절 말씀이 생각았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차별하고 있었음을 회개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여 성도가 수감되어 있는 구치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펑펑 눈물을 솓아내며 면회 사간이 다 가도록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제가 그를 면회하고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만약 제가 그날 그분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마음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사랑이라는 열매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사랑의 열매로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해 보세요.
"아빠 아버지, 저의 믿음이 사랑이라는 열매로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사랑 없이 냉냉한 거짓 신자가 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매 가슴에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를 박아 주세요. 나는 예수님께 접붙인바 되었사오니. 예수님처럼 온 인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먼저 제 아내부터 사랑하게 해주세요.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듯이. 제가 주님을 사랑하듯이 저의 아내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 사랑이 넘쳐 흘러 주위를 사랑으로 물들이게 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 영성 훈련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 정수환 목사
아들의 고통이 아니었다면,
샬롬!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김 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김 비서는 부회장 입맛에 딱 맞게 비서직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부회장 행선지가 궁금할 땐 “어디로 가실지 여쭤봐도 될까요?”라는 식으로 물어봅니다. 아무튼, 김 비서는 부회장의 분신처럼 행하고 있는 겁니다. 부부간에도, 서로가 김 비서처럼 행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제가 늘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제 앞에 놓인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에도 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이 저로 하여금 ‘소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줬습니다. 1970년대엔 C형간염으로 고생했고, 1993년엔 위암수술로 위를 절제했습니다. 2008년엔 담석수술을 했을 뿐 아니라, 장이 유착되어 내장을 75㎝가량 잘라냈습니다. 몸이 저를 공격할 때마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반대급부로 믿음은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제 믿음을 성숙시킨 것은 제 아들입니다. 신부전증을 앓는 아들에게 신장을 이식해주고 간호하는 과정에서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네 아들에게 감사한 적 있느냐?” 그렇습니다. 아들의 고통이 아니었다면, 저는 하나님을 그토록 애타게 찾지 않았을 겁니다. 아들은 ‘변함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환한 미소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울림이 지금도 제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주님은 제 인생의 기준입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출처: 가이드포스트, 정근모)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요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정근모 박사도 아들의 고통 앞에서는 주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단10:12).
예림집선교단을 위한 10가지 기도 제목
안녕하세요. 예림선교단장 김정민 목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열정에 따라 주님이 계획하시고 행하실 도구로 저희 예림선교단이 세워졌습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로 감당하며, 기도로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저는 중보기도의 힘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일일히 여러분을 찾아 뵙고 정중히 부탁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면을 통해 선교단을 위한 중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하루에 한번 여러분의 기도 시간에 이 기도 제목을 읽어 내려가 주신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충보기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도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능력을 체험합시다.
하나, 오직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는 선교단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전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누고 헌신하게 하소서
둘,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역사해 주세요. 사역에 필요한 은혜와 능력과 은사를 부어주세요.
셋, 기도로 무장하는 선교단이 되게 해주세요. 감사의 기도, 헌신의 기도, 결단의 기도, 나눔의 기도로 풍성하게 하소서.
넷, 선교단의 목표인 "예배의 회복과 부흥" "전도와 선교" "나눔과 구제" 를 위하여. 절대 흔들리지 않고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소서.
다섯, 기도와 물질과 봉사 헌신자들을 많이 보내주세요. 주님의 일을 감당함에 많은 지체들이 동참하여 합심하여 기도하고 헌신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영광을 들어나게 하소서.
여섯, 전적으로 헌신된 동역자들이 불러 모아주세요.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열정과 감사함으로 삶을 주께 드리고 이 시대의 성령의 불꽃을 지피는 복음의 전도자들이 되게 하소서.
일곱, 예배하며 훈련하며 섬길 수 있는 좋은 교회를 연결해 주세요. 선교에 대한 비전이 있는 교회, 바른 신앙관을 가진 목사님, 훈련하고,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여덟, 예림의집 카페가 복음의 베이스켐프가 되게 하시고, 예림방송국이 다시 세워져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며, 좋은 찬양단을 세워 전국과 열방에 찬양을 울려퍼지게 하소서.
아홉, 선교단 첫 열매인 책자가 9월달에 계획대로 잘 만들어져 나오게 해 주세요. 이 책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하시고,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변화받게 하시고, 결단하고 헌신하게 하소서.
열, 저를 선교단장으로 세워 주시고 비전과 사역을 주셨사오니, 겸손과 기도로 무장하게 하시고 다윗과 같은 영도력과 다니엘과 같은 지혜와 보아스와 같은 풍요함을 주사 열정을 가지고 목숨 다해 섬기게 하소서.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1328번째 이야기 (0) | 2018.06.28 |
---|---|
예림의집 1327번째 이야기 (0) | 2018.06.27 |
예림의집 1325번째 이야기 (0) | 2018.06.25 |
예림의집 1324번째 이야기 (0) | 2018.06.23 |
예림의집 1323번째 이야기 (0) | 2018.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