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325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새들의 대화
1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새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야외에 앉아서
또는 나무들이 우거진 곳에서
야영을 하며
가만히 들어 보세요.
새들이 내는 서로 다른 노랫소리,
서로 부르는 소리,
찍찍 짹짹 우짖는 소리들을
구별해 보세요.
느긋하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음악을 들으며
이 즐거운 선물을 주신 것에
감사드리세요.
그리고 새들이 서로 부르는
소리를 한두 개 배워 보고,
날개를 가진 친구들은
하나님과 어떻게 대화할까
상상해 보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오직 네 죄를 인정하라
"오직 네 죄를 인정하라!" 나는 한 타락자에게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반복하여 말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죄를 인정하십니오. 그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성경에 정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나는 그에게 이 구절을 펴 보였습니다.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예레미야 3:13). 그러자 그는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게서는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방황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 당신이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게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내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세아서 6:4). 그렇습니다. 그분의 긍휼과 사랑은 정말 놀랍습니다. 예레미야 3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예레미야 3:22). 그분은 타락한 자녀들의 입 속에 이 말씀을 넣어 주셨습니다. 돌아오라! 당신이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은혜와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호세아 14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세야서 14 1-4).
이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돌아오라! 돌아오라!" 이 말씀이 구절마다 울려 퍼지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당신이 방황하고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주님을 떠났지만 주님은 당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타락의 구덩이에 빠져 들어갔을 때처럼 당신은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주님을 떠났던 그 길로 돌아온다면 바로 그곳에서 당신은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사랑이 제일인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초대교회이 터툴리안이라는 교부의 글에 보면 초대교인들은 종종 불신자들에게 전할 때 "당신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습니까?"라는 말로 전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렇게 불신자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요즘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말만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교회를 싸움하는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얼굴이 붉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두 명의 승객이 큰 소리로 싸우고 있는데 보다 못한 어느 할아버지가 그들을 향해 이런 호통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왜 여기서 싸우는 거야? 여기가 교회인 줄 알아?" 세상 사람들만 교인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조차 교인들을 무서워합니다. 교인들끼리도 망므을 열고 아픔과 고민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교우들과 함께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도착한 날 저녁에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 참석자들에게 숙소를 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직 잠에 드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람이 서로 대화하느라 잠을 자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어보았더니 대부분 남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일찍 자기는 틀렸다고 생각해서 아예 대화 주제를 정해 주었습니다. "교회 부흥과 소그룹 부흥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세요." 그랬더니 5분도 안 되어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우리의 삶이나 신앙 생활에 중요한 것이 많지만 그중의 제일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랑이 제일이라고 믿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이 제일이라고 여기고 사십니까? 사랑이 제일이 아니었다면 그동안 무엇을 제일로 여기며 살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제가 그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성경적 기준으로 교회의 임원(제직)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제일로 여기셨는데 저는 그 사랑을 너무 가볍게 여겼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 헌금하고, 교회 봉사 잘하면 중요한 직임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자 애를 썼지만 이상하게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심사숙고해서 세운 이들이 교회를 일으키기는커녕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된 것은 처음부터 임원을 세우는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 4:2).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이며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갈등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많은 일을 감당했지만 동시에 갈등과 분열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왜 교회 안에서 미기, 시기, 다툼, 분열,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사실은 사랑이 제일이라고 믿지 않기 때무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 옳고 그른 것을 매우 중요하게 따집니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중에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판단이 부정확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깨지고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 말씀에 대한 지식 때문에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강해집니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은 강한데 사랑이 없으면 무서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말만 잘하낟는 피판을 받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며, 죄를 지은 사람을 가차 없이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율법에 대한 지식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와 같았습니다. 그들 안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만 있지 정작 중요한 사랑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른 것만 따지다 보면 서로 죽이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이 예수님의 마음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어려서 집안이 너무 어려워 창녀촌으로 팔려간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매는 어떤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자신들의 어둠을 스스로의 힘으로 거둬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장녀촌을 탈출해 아무도 자기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도시로 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자매가 창녀촌에서 지낼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주일에 온 가족이 함께 교회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청년과 자매는 자기들의 발로 교회에 찾아가 등록을 했습니다. 그 후 부부는 누구도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모두 집사가 되었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행복한 삶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한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어느 집사가 자매의 과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해 보이는 자매가 그렇게 더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정말 가증스러워! 어쩜 자기의 더러운 과거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을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퍼져나간 귀속말은 그들 부부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들 부부는 교인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전에 그토록 친절하고 따뜻했던 교우들이 자기들만 나타나면 마치 벌레 보듯이 힐끔거리며 자리르 피했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교우가 자기들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교이들에게 다가가려고 계속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교인들은 그들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창녀촌보다 더 싸늘한 교회에서 그들 부부는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결국 어느 날 부부는 수면제를 나눠 먹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을 청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부부의 느닷없는 죽음 앞에서 담임 목사는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제가 양 떼를 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리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내가 속한 교회에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 내외를 품어 줄 수 있을가요? 사랑이 제일이라고 여긴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 없는 마음 때문에 상처를 주거나 받은 경험이 있다면 써보시기 바랍니다.
"아빠 어버지,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가슴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교회가 욕을 먹고, 그리스도인이 무시를 당하는 것은 저 같은 말만 잘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회개합니다. 용서하시고, 사랑의 종이 되게 하소서. 내 안으로 주님 주신 사랑으로 가득차서 그 사랑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 영성 훈련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 정수환 목사
성공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
샬롬!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6․25동란 68주년입니다. 그 당시 전사자가 유엔군(한국군 포함)이 18만, 공산군(북한.중공)142만, 남측 민간인피해가 사망(부상포함)99만, 납북자 8만5천, 전쟁고아가 남한만 10만, 전쟁미망인도 남한만 30만 명이랍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겁니다.
인생은 50이 되기 전에 평가하면 안 됩니다. 자녀들을 양육할 때, 아이들이 커서 50쯤 되면 ‘어떤 인간으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도, 성공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유명해지기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인생이 더 귀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그러했듯이, 내 자녀들도 기독교와 더불어 자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스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설정하는데 기독교정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신앙은 가장 소중한 인생의 선택입니다. 나는 손주들의 교육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내 자식들이 나보다 더 좋은 교육을 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청을 받으면 상담하는 정도는 했습니다. 그러나 손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내 자식들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내 자식들과 손주들이 기독교정신에 따라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출처: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그러니까, 김 교수님은 자녀들이 ‘성공한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겁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6-8).
신앙고백
나는 성경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완전무오, 필요충분함을 믿습니다.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유일한 참 신이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재림하실 것과 심판과 천국과 지옥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그의 나라의 백성인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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