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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305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6. 1. 08:55

예림의집 1305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파괴와 회복


장미를 한송이 들고

꽃잎을 하나씩 떼어 보세요.

낡은 시계를 분해해 보세요.

그 쫓입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붙이고,

시계를 조립해 보세요.

파괴하고 분해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다시 붙이고 조립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혹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예를 들어 무시하고, 

파괴적인 언사로 비난하고,

생각없는 농담으로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그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지금까지 파괴를 일삼았다면

이제부터는 

회복을 위해 노력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바라보는 방법 세 가지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당신이 비참하게 되길 원한다면 당신의 내면을 바라보면 되고, 마음이 심란해지길 원한다면 주변을 돌아보면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평강을 소유하기 원한다면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로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순간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게서는 베드로에게 "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마태복음 14: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대리석이나 강철보다도 더 훌륭한, 단지 걸어가기만 하면 되다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주어졌지만,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순간 바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또한 주위만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걸음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불명예스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창조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소년시절 나는 앞에 있는 나무나 어떤 목표물에 눈을 고정시킨 후에냐 눈 위에 똑바른 발자국 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내 눈을 앞에 있는 표적에서 돌리는 순간 나는 또바로 걷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평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39).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지닌 평강의 근원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의심을 떨쳐 버리기 원한다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한다면 의심을 품고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를 바라보지 말고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주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평강과 쉼을 얻게 되는 길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시험을 이기는 기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태복음 26:41)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통해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지 계속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마귀의 공격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길 뿐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26:36-46).

예수님게서는 "나와 함게 한 시간도 이렇게 개어 있을 수 없더냐?"하시며 잠자는 제자들을 깨우셨습니다. 새벽 단잠을 깨우는 시계 소리가 짜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다 보면 "졸려서 기도하기 어렵습니다."라는 말이 교인들 얼굴 표정에 역력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6:41을 통해서 힘들어도 기도해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서 자명종 시계를 맞추어 놓고 자는데, 늘 일어나지만 가끔 너무 피곤한 날에는 "하나님, 죄송해요!"하고는 다시 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마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내게 죄송할 것 없다. 네가 큰일이지!" 만약 미친 개 한 마리가 집 안에 들어와도 "졸린데 어떻게 합니까?"하고 잘 수 있을까요?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성도들이 처해 있는 영적 상황은 마치 전쟁터와 같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성도와 교회를 공격하고 시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태복음 6:13)라고 기도하기를 가르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영이 깨어 있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마귀의 시험을 분별할 수 있고, 결국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죄짓는 일과 진실한 기도는 변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그만 두든지 죄짓는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부부 싸움도 기도하면 반드시 화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잘 안 된다면 자신의 영적 상태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새벽기도회에 며칠 나오더니 "목사님, 새벽기도도 좋지만 하루 종일 졸려서 아무것도 못하겠습니다. 저는 새벽잠이 많아서 새벽기도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자고 기도하는 것인데 오히려 기도하고 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하고 종일 몽롱하게 하루를 지내도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유혹이나 시험이 올 때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또한 이길 힘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사는 성도는 아무리 똑똑하게 사는 것 같아도 실은 졸고 몽롱하게 사는 것입니다. 안일한 기도생활은 유혹과 시련이 닥칠 때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기도에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기도할 때가 지났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기도하는 것과 고등학교 3학년 ㄸ 기도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아가 되기 전에 기도하는 것과 문제아가 된 이후에 기도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조금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무장하는 길이요, 시험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1)라는 말씀은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흔히 핑계로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마음은 기도하고 싶지만 육신이 약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에수님도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육신에 대해서 약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육신은 너무 강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하도록 끌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육신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이 분명히 깨달아지면 육신을 이기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그 확신이 분명하지 않으면 육신에 휘둘리게 됩니다. 피곤하고 졸려서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잤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자들이 육신에 대해 약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기도를 꾸준히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 서게 됩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시험이 찾아오면 금방 육신에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 사람은 시험이 와도 육신대로 반응하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짜증나는 일, 마음 상하는 일, 고통스러운 일이 올 때도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순종하게 됩니다. 미워하고, 정죄하고,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피곤하고 힘들어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번은 제 아내가 화를 낸 일로 크게 낙심해 있었습니다. "새벽에 충만하게 기도하고 나서도 저는 왜 이 모양이지요?"라고 말하며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기도하면서 이런 비슷한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벽에 충만하게 기도했기 때문에 마음에 찾아온 위기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기도가 없으면 그 짜증과 화로 인한 영적인 침체가 며칠을 갔을지 모릅니다.


다니엘을 하루에 세 번식 기도했습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왕의 조서가 내렸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선는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기도를 형편과 여건에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형편이 좋아서 기도한 예도 없고 그렇게 해서 역사가 일어난 예도 없습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는 형편에 있을지라도 영적인 숨통이 열릴 때까지 매달리면 어느 한 순간에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영적인 세력이 꺾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승패가 능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도의 골방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의 골방이 있는 자, 즉 예수님과 인격적인 친밀함이 있는 자는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당당히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찬송가 354장의 작사가는 월포드 목사입니다. 그는 맹인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겠습니까? 여러 가지 근심과 걱정이 그를 사로잡을 때도 있었지만 그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했습니다. 기도 시간이 즐거운 것은 물론 기도하는 시간을 통하여 근심과 걱정을 이길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1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네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

여러분도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즐거우십니까? 세상과 육신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즐겨 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기도할 때와 기도하지 않고 살 때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떻게 다릅니까?


"아빠 아버지, 저에게 기도의 힘을 주옵소서. 지금보다 더욱 더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어떠한 핑계를 대지 말고, 오직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아뢰고, 주님의 뜻을 듣는 일이 나의 기도의 습관이 되게 하소서. 어떠한 것도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찬양 세미나 강의입니다...

찬양의 유익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면, 우리의 간구 소리에 응답해 주셨다면, 우리는 평생토록 주께 감사하며 주를 찬양해야 합니다. 응답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서 베풀어 주신 긍휼에 대해 감사치 않고 잠잠히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을 잊어버리면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찬양은 기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데 아주 중요한 방편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짐을 덜어 주고, 우리의 소망을 높여 주며, 우리의 믿음을 증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찬양은 성도의 신앙 맥박을 촉진시키며 주님을 새롭게 섬길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건전하고 활기찬 운동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받은 긍휼로 인해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은 동료들에게도 유익을 끼치는 일입니다. “겸손한 자들이 그로 인해 듣고 기뻐할 것이라(슥 9:9).”만일 우리가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이 불쌍한 사람이 구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응답하셨도다(시 34:3-4).”라고 말한다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노래”를 듣고 약한 심령들이 힘을 얻을 것이고, 축 늘어졌던 성도들은 활기를 되찾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가르치고 권면할 때 그들의 의심과 두려움이 쫓겨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이 광대하다고 말하면, 그들 역시 그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이름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여러분의 찬양에 대한 열정을 높이기 위해 찬양이 주는 유익을 열 가지로 정리해서 소개하려 합니다. 물론, 찬송의 유익이 더 많이 있지만, 이 10가지만 잘 인해해도 여러분의 찬송이 더욱 풍성하게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 충만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시 71:3)”“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3:3)”

둘째로, 상한 마음이 회복되고 육체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타나낼 자라(사 61:3)”“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 16:23)”

셋째로, 구원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 6)”

넷째로, 하나님을 경배하므로 하나님을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 29:2)”

다섯째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시 147:12-14)”“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 27:5, 6)”

여섯째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대하 20:21-22)”“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사 42:12, 13)”

일곱째로, 믿음의 교제를 갖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 47)”

여덟째로,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14)”“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시 33:1)”“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아홉째로,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 146:2)”“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시 108:1)”“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 57:7)”

마지막으로, 찬양은 우리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언제 어디서든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 119:164)”“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28)”“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시 69:30)”“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마지막 신청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