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후원 사역†/복음 이야기

예수 천당. 불신지옥!

예림의집 2018. 5. 26. 11:11

예수 천당. 불신지옥!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너무 투박하고 직설적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투박하고 단순한 외침이 바로 성경의 진리입니다. 성경의 주제이기도 하지요. 이 말을 외칠 때에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많은 분들이 교회를 찾았고, 구원의 대열에 합류한 것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최봉석목사님(최권능목사님으로 더 유명하셨지요)은 이 단순한 외침으로만 74개의 교회를 개척하셨다고 하는데 어찌 비성경적인 협박만으로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였겠습니까?

실제로 이 말 속엔 복음의 핵심과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 천당"에서 구원의 길이 제시되었다면 "불신 지옥"에는 불신자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배어있는 것이었지요. 영혼구원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데살로니가후서1:8, 9).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러한 전도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몇가지 문제를 내포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교회에 대하여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수준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공격당하는 것도 자주 목격합니다. 잘못된 편견이나 무조건적인 적대감도 있지만 오히려 기독교답지 못한 현대 한국교회와 교인들에 의하여 자초한 면이 큽니다.

십자가의 삶이 아닌 세상과 타협한 적당주의, 세속주의가 결국 세상 사람들에게도 조롱당하는 형국을 맞이하게 된 원인이 아닐까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복음의 진리마저도 도매금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예수님 이래 기독교가 환영받은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서 마땅히 배타적인 복음의 진리는 극렬한 반대와 핍박을 받게 됨이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고 하여 그 전하는 방법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귀한 선물도 포장지가 투박하면 우선 거부감을 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입니다. 특별히  인격적인 접근방식이 아닌 무작위적인 선포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진 자들에겐 그들의 고정관념만 더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세상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알고 느끼는 바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실제로 기독교는 배타적입니다.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은 종교현상에 대한 이해는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독교와는 무관한 분들입니다. 세상의 종교체계는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요한복음 5:24). 세상 사람들은 천국이 있다면 착한 사람이 그곳에 가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착한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합니다(로마서 3:23).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은 사람이 지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디모데후서 3:16). 세상은 인간의 노력과 선행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천국을 만드신 그 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기준을 앞세우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기본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너무나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타협이 불가능한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니느웨에서 요나는 마지못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게 되었는데, 사흘이나 걸려야 할 거리를 하룻길만 다니며 대충 외쳤음에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요나를 사용하셔서 니느웨의 회개를 이끄신 것을 보면(요나 3:3, 4절), 전도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령의 역사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기 한국교회와는 분명히 다른 현실 앞에서 우리는 좀더 합리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당시에는 기독교에 대하여 들어본 사람이 없었기에 이 단순한 복음에도 호기심어린 반응도 기대할 수가 있었고 실제로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많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호기심보다는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화된 시대인 만큼 더욱더 그들의 마음의 귀를 막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러한 엄연한 현실 앞에서 먼저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대한 진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듣든지 말든지 전하기만 하면 전도자의 책임을 다한 것이라는 생각은 설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귀를 닫은 자들에겐 더욱더 인격적이며 진실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베드로전서 3:15).

우리는 마땅히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임을 전해야 합니다. 왜 오직 예수인지 분명하게 알려야 합니다(요한복음 14:6). 그러나 겸손함과 온유함,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귀한 일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귀한 일에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모두 참여하길 소망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로마서 1:16절)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영원한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