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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학

예림의집 2018. 5. 24. 14:41

최근 신학

   

“디트리히 본회퍼”는 1960년 이후 신학이 급진화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핵심 사상이자 혁명적인 개념인 무종교적 시대와 무종교적 기독교, 혹은 성인된 세계와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은 기독교 신학계에는 큰 충격을, 젊은 신학자들에게는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세계신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본회퍼를 제외하고 20세기 신학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대 신학계에 미친 그의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기독교인은 물론 많은 비기독교인까지도 사로잡는 본회퍼의 매력은 그의 삶과 사상의 일치에서 찾을 수 있다. 히틀러의 독재 정권에 용기있게 항거하고 저항한 끝에 투옥되어 39세에 처형당한 그의 삶은 그가 강조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의 삶의 실현이었다. 본회퍼는 「옥중 서간」에서 성인된 세계와 비종교적 해석으로 요약되는 혁명적인 개념들을 주장했다. 

그의 신학은 20세기의 후반의 개신교 신학, 가톨릭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젊은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의 초석으로 본회퍼의 신학적 개념을 채택했다. 특히 세속화 신학자들과 사신신학자들이 그러하다. 그의 비종교적 기독교 개념에 자극을 받아 기독교의 세속화론이 일어나고 그것에 기초하여 세속화 신학이 형성되었다. 

세속화신학은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을 발전시킨 것이다. 사신신학은 세속화신학의 극단적인 형태로 전통적인 기독교 유신론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했던 급진 신학이다. 세속화신학의 또 다른 변형들로 간주될 수 있는 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해방 신학 역시 본회퍼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것이다. 억압받는 자의 해방을 강조하는 남미의 해방 신학, 북미의 흑인 신학, 죌레의 여성 신학은 본회퍼의 고난받는 하나님에 대한 사상에 힘입은 바 크다. 상황 윤리 역시 본회퍼의 ‘타자를 위한 존재’, 성육신의 사랑의 개념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로빈슨과 하비 콕스”에 이르러 세속화신학이 더욱 급진화되고 과격화되었다.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와 콕스의 「세속 도시」를 통해 세속화신학은 대중화되었다. 1960년대 이후의 서구 신학은 전반적으로 세속화로 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성에 대한 관심이 1960년대 신학의 특징이었다. 세속화란 말은 신학적으로 사용될 경우, 대부분 그것은 ‘이 세상의 일이나 사건에 관심을 돌리는 것, 세속적 영역의 자율의 의식, 세속적인 것을 신성한 것에 종속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속화는 한 마디로 인간의 자율화, 본회퍼의 표현에 따르면 ‘성인된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세속화는 세속주의(secularism)와는 구별된다. 세속화는 근본적으로 해방을 뜻한다.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종교적인 지배와 형이상학적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세속화이다. 반면, 세속주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다. 

    

“신 죽음의 신학”은 미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급진 신학이다. 이것은 1960년대 전세계 신학계에 화제를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신 죽음의 신학은 하나님 상실의 경험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재발견을 토대로 현대 미국의 낙관주의적 사고에 의해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함으로써 해결하려 한 급진적인 신학 운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는 신학을 전개하려 했던 세속화 신학의 극단적 형태였다. 신 죽음의 신학의 핵심적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독교 전통적인 초월자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으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의 죽음은 또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인 교훈에 근거하여 새로운 윤리 종교로서 기독교를 재조직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경험적 사실의 배후에 있는 초경험적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신뢰성을 두는 실증주의적 태도로부터 나온 것이다. 

가장 과격한 사신신학자는 알타이저였다. 알타이저는 급진 신학을 개신교의 현대적인 발전으로 이해했다. 그는 초월적이면서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죽음을 역사적인 사실로 간주했다. 성서는 하나님의 실재나 임재만 말할 뿐, 초월적이거나 인격적인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를 성서적 신앙의 타락으로 생각했다. 요약하면 알타이저는 엘리아드의 종교 현상학, 니체의 허무주의, 불교의 신비주의에 근거하여 기독교 전통적인 신 개념을 부정했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죽었으며 내재적인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 죽음의 신학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비성서적이며 비신학적인 데 있다. 그것은 현대의 시대 정신과 결탁하여 기독교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포기하거나 부정했다. 기독교의 전통을 부정하는 대신, 니체, 포이엘바하, 동양종교 등을 기독교 신학의 참된 전통과 교사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반신학적이요, 반성경적이다.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은 도덕적 혼란, 허무주의의 초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같은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위르겐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을 주도했다. 1970년대 중반 사신신학의 잿더미로부터 불사조 같이 일어난 것이 ‘희망의 신학’이었다. 희망의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희망의 촛불을 꺼버리지 않고 살려놓은 것이다. 현재를 강조하는 실존주의 신학과 달리, 희망의 신학은 미래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희망의 신학은 ‘미래의 신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의 신학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그의 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신학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몰트만은 오늘날 생존하고 있는 신학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희망의 신학」에서 몰트만이 이룩한 가장 큰 신학적 업적은, 종말론을 교의학의 일부가 아닌 신학의 전체로 간주한 것과 종말을 역사화하고 사회화 한 것, 미래적 종말론 회복이다. 몰트만은 종말론의 개념을 현대 신학의 주요 주제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희망의 신학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지나친 일방성과 편향성이다. 


“해방 신학”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최대 신학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해방 신학은 오랜 식민 통치와 군사 독재로 인구의 절대 다수가 빈곤과 억압 속에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로부터 가난한 자와 눌린 자를 해방시키려는 역사적 과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해방 신학은 남미의 ‘불공정한 상황을 제거하고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공동 노력의 체험에서 생긴 신학사상이다.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해방 신학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된 종교 사상이 되었다. 또한 해방 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급진적인 신학뿐 아니라 북미의 흑인 신학과 여성 신학 그리고 최근의 생태학적 신학을 포함하는 현대의 큰 신학적 흐름을 형성했다. 특히 해방 신학은 1980년대 들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정황과 맞물려 큰 반향과 논쟁을 일으켰다. 라틴 아메리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한국의 상황이 해방 신학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했으며, 민중 신학의 태동이 해방 신학 논쟁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민중 신학은 세속화신학과 해방 신학의 영향을 받은 일부 해직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1970년대 유신 체제속에서 억압받는 모든 민중의 해방을 목표로 생성되었다. 

따라서 민중 신학은 출발점과 목적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해방 신학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판 해방 신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해방 신학 논쟁은 순수 학문적인 차원보다 오히려 정부의 이데올로기 비판 교육적인 차원에서 전개된 면이 없지 않았다. 해방은 성서적인 주제인 동시에 좋은 개념임에 분명하다. 해방 신학이 해방을 강조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 해방이 죄로부터의 해방, 영적 해방이 아니라 정치적 또는 사회적 혁명으로 이해한 것이 문제였다. 

해방 신학은 성서 본문이 아닌 인간의 경험과 역사적 정황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것은 해방 신학이 19세기 슐라이에르마허로부터 시작되는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론을 그대로 수용했음을 말해 준다. 해방 신학은 사회주의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독교의 진리와 성경을 왜곡시키고 그릇되게 해석했던 것이다. 특히 해방 신학의 죄론, 구원론, 교회론 등이 비성서적이며 인간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신학”은 전통 신학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된다. 전통 신학이 지닌 성 차별적이며 여성 억압적인 요소를 지적하고, 이를 여성적 관점에 근거하여 교정하려고 하는 것이 여성 신학이다. 신학적 흐름으로 보면 여성 신학은 해방 신학의 한 유형에 속한다. 해방 신학의 영향을 받아 남녀간의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에서 일어난 것이 여성 신학이다. 

따라서 여성 신학은 해방 신학과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독특한 것은 여성의 인간화, 즉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여성 신학은 여성을 억압하고 비인간화하는 모든 제도와 세력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에 궁극적 목적을 두었다. 여성 신학은 가부장적 문화와 이원론적 세계관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합리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여성으로 하여금 이러한 억압의 상황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여성 신학은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전자를 포기하고 후자 즉,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심지어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고 여성의 경험에 근거하여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구성하려는 과격하고 혁명적인 입장이다. 하나님을 가부장적인 남성 신으로 해석하여 이를 거부하는 반면, 궁극적인 실재를 표현하기 위해 ‘여신(Goddes)’이란 명칭을 도입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 신학이 성경을 가부장적이며 반여성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성경의 초자연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것은 삼위 일체 하나님에다 제4위를 첨부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과정 신학”은 미국에서 일어난 독특한 신학 운동이다. 이것은 1930년대 초 시카고 대학교의 신학부 교수를 중심으로 시카고학파를 형성하여 전개되었다. 전통 신학이 존재의 철학에 기초했다면, 과정 신학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혹은 생성의 사상을 모델로 하여 현대 정황에 맞는 신학을 형성한 것이다. 과정 신학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출발점으로 하여 형성된 것으로 그의 철학 개념을 활용하여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과정 신학이 신의 본성과 신과 세계의 관계를 중심 문제로 삼은 것이나 신의 내재성을 강조한 것은 화이트헤드의 영향이었다. 따라서 과정 신학의 토대는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정 신학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지지자들은 과정 신학을 ‘성서적 유신론에 대한 최초의 조직적 표현’이라고 평하거나 세기 이후 기독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으로 간주한다. 반면 비판자들은 ‘현재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과정 신학은 좁은 의미로 과정 신학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에 근거하여 미국에서 일어난 신학 전통을 말한다. 보다 넓은 의미로는 샤르댕 또는 화이트헤드와 샤르댕 사상 모두로부터 유래하는 신학 전통을 가리킨다. 화이트헤드가 과정 형이상학파를 대변한다면, 샤르댕은 과정 사사의 진화론파를 대변한다. 미국의 과정 신학은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철학에 근원을 둔 신학이다. 시카고학파의 제2세대에 속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이 오그덴과 콥이다. 

오그덴의 신학에는 두 가지 주요 원천이 있다. 하나는 불트만 및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이요, 다른 하나는 하트숀 및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이다. 오그덴은 현대의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불트만의 해결책을 비판 분석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하트숀의 사상에 기초하여 해결책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불트만은 인간을 적절히 분석하고 강조했지만, 하나님은 분석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했다. 그는 신학을 인간론과 병행하여 발전시키지 않았다. 이에 반해, 오그덴은 하이데거나 불트만의 인간론을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신론과 결합시킴으로써 불트만의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했다. 

즉 불트만의 실존주의적인 배경으로부터 출발하여 하트숀의 과정으로서의 신 개념에 접근했다. 이 결합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양자의 인간 실존의 분석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트숀은 하이데거의 인간 존재 이해에 상응하는 신의 존재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오그덴은 이런 결합으로 직접적인 경험의 영역과 과학에 적합한 사유 양식 안에서 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종교 다원주의”가 최근 신학적 토의에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는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는가 등의 문제가 조직 신학자, 종교 철학자, 종교 현상학자, 선교학자,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기독교만이 참 종교요 절대 종교라고 믿는 기독교 절대주의의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 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다원주의는 기독교인에게 큰 도전과 위협이 되었다. 기독교처럼 자신을 절대적으로 유일한 종교 혹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라고 주장하는 종교는 없기 때문이다. 

종교 다원주의는 첫째,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는 신념. 모든 종교는 동일하다는 신념, 모든 종교는 공동의 심리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을 주장한다.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를 유일한 참 종교가 아닌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종교 다원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종교적 다원주의는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으며 원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데서 반 성서적인 종교 다원주의가 일어났다. 따라서 종교 다원주의는 비성서적인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인 동시에 오류이다. 그러나 현대 가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 문제에 대해 가장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5)를 분수령으로 하여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인 교회 중심주의와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를 포기하고 타종교들과 교회의 관계성을 주장하는 포괄주의로 입장을 전환했다. 그것은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의 중간을 의미한다. 

    

“생태학적 신학과 창조 신학‘은 현대라는 정황이 만들어 낸 전형적인 상황 신학이다. 생태학적 위기에 직면한 현대의 정황을 주제로 하여 전통 신학의 창조 이해를 비판하고 창조 보존을 위한 새로운 신학적 기반을 마련하려 했기 때문이다. 생태학의 입장에서 창조론을 최초로 전개한 학자는 몰트만이었다. 그는 현대의 생태론적 세계관의 도전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응답으로 생태학적 창조 신학을 제시했다. 몰트만은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안식일의 의미 재발견에서 찾았다. 

생태학적 신학의 가장 큰 공헌은 그 동안 등한시되었던 창조론을 신학의 주제로 새롭게 부각시켜 창조론의 부흥을 가져온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성서적 창조 신앙의 본래 의미를 탐구하여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것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전통 신학뿐만 아니라 현대 신학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사의 배경으로만 취급되어 어떤 중요성도 지니지 못하던 자연 세계를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아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새롭게 해명한 것이 생태학적 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