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이성의 기준과 근거로 삼는 것
이성을 이성의 기준과 근거로 삼는 것은 사실 일종의 믿음 내지는 신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기준과 근거는 이성에 속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성이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이성의 판단과 결정 이전에 주어지는 전제와 같은 것입니다. 이성을 초월한 믿음에 속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성이냐 믿음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이성답게 해 주는 믿음이냐 아니면 이성을 맹목적 대상으로 삼는 믿음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 자체를 이성의 기준과 근거로 삼는 것은 맹목적 믿음입니다. 이성을 이성답게 취급하는 믿음은 바로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흔히들 생각하듯 마치 이성이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성이 이성의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한 것이지 이성과 대치되는 것으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이성이 결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기독교를 비방하기를 기독교는 마치 이성의 활용을 무시하고 단지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의 계시의 권위를 인정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관적인 믿음으로 의존하는 권위는 확실성 내지는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난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하나님으로 증명할 수 없고 하나님의 계시의 권위를 그 계시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러한 기독교 순환 논리를 전면 배격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실재에서 어떻게 절대 신의 권위를 그 신의 권위 외의 것으로 그 권위를 증명할 수 있습니까? 혹 절대 신을 부정한다고 해도 무엇인가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기준과 근거를 삼아야 하지 않습니까?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의 권위를 세우려면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 외에 다른 것으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세운다고 할 때는 그 다른 것이 그 권위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에서만 아니라 인간 실재에서 다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경험주의는 모든 지식을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주장을 위한 어떤 근거와 기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근거와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경험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는 확신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심리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확신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진리라고 전제하며 불변의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러면 “경험주의는 틀림이 없다”는 전제 혹은 권위는 어떻게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까? 사실 “경험주의는 틀림이 없다”는 것은 경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경험을 통하여 진리임을 증명된다고 하는데 “경험주의는 틀림이 없다”는 확신은 경험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확신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알 수는 없지만 권위로 그렇게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주의적 전제 혹은 권위는 경험주의자에게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만약 경험주의 전제나 권위보다 더 궁극적인 전제나 권위가 있다면 그 경험주의 전제나 권위는 더 이상 궁극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경험주의 전제와 권위는 경험주의 전제와 권위에 입각해서 주장해야 합니다. 이렇듯이 경험주의가 내세우는 기준과 근거를 스스로 절대적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주의도 일종의 믿음을 자신의 경험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성경의 하나님의 권위를 믿는 믿음이 더 합리적인가? 아니면 경험주의 권위를 믿는 믿음이 더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코 하나님을 궁극적 전제와 권위로 내세우는 것을 미신이고 악순환이라고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경험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경험주의 전제나 권위는 지식에서나 경험에서 제한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 스스로가 추론한 것이기 때문에 계시로 주어진 성경의 권위와 전제가 더 합리적이고 더 권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들이 기독교의 전제와 권위를 더 합리적이라고 수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계시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것을 맹목적이며 비합리적이고 자신의 믿음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절대적 신이라고 한다면 그의 계시 외에 어떤 것도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성을 절대적 위치에 놓는 이성 자체는 우리 인간에게 속한 것이고 인간의 제한성과 인간의 숙명과 길을 같이 가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 스스로가 권위를 인정하고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기독교를 비방한다면 그 비방이 자기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들이 자신의 이성 외에 다른 것에서 궁극적인 권위를 찾는다고 한다면 결국 자신들의 이성을 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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