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①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아가 아닌데 고아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고아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②아바와 함께 있는 자녀가 가장 행복한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③사랑받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존재만으로 너무 사랑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저녁 예배를 드리는 데, 하나님이 저의 외로움과 그동안 수없이 많은 죄를 지은 것에 대해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도 모르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의로울 때 누군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님은 늘 제 곁에 계셨다고 할 때 어찌나 눈물이 쏟아졌는지 모릅니다. 정말 외롭고 힘들 때 '주님이 나 좀 위로해 주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 중에 깨닫게 하신 것은 그때 내가 혼자가 아니어서 지금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주님이 제 곁에 계셨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3 간증)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이 자신 안에 계신 것을 믿으면서도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에요?", "어떻게 하라고요!", "왜 홀로 내버려 두시는 거예요?"라며 탄식합니다.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경이 알려 주는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절대로 우리를 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와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난다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매우 근심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하니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말슴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한복음 16:7).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은 성령님이 모든 믿는 사람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눈 앞에 예수님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셔서 완전히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부부 간에도 경험할 수 없는 완전한 친밀감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게 하신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하루에 3-4시간 붙어 있으면 많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24시간, 365일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나와 늘 함께하시는 겁니다. 지금도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사실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을 통해서 모든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아십니다. 성령님이 함께한다는 것을 아는 것, 성령님이 나를 찾아와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고아라고 여기면서 사는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꼭 그렇게 삽니다. 함께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믿음과 교제가 없으니 지독한 외로움 병에 걸려서 삽니다. 그리고 마귀는 늘 외로움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어는 전도사가 예수님을 모르던 청소년 시절에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까?"라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울만한 사람을 세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으로는 '부모님은 내가 죽으면 진짜 슬퍼하실까?' 이런 생각도 하였습니다. 고아처럼 사는 것입니다. 자신을 고아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강해질수록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나랑 친한 친구가 나보다 다른 살마들과 더 친해지면 견딜 수가 없고, 누군가가 나를 깔보는 것 같으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외로울수록 죄를 더 짓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영적으로는 완전히 고아처럼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학 ㅔ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에베소서 3:16, 17).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무엇으로 말미암아 계신다고 했습니까?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성령으로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고아가 아니며, 우리 마음에 성령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또한 믿음의 역사에서 놀라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정상까지 오르고 내려가는 길에 너무나 아름답지만 안쓰럽기도 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것은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를 안고 정상까지 올라온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누가 봐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고, 지치고 힘든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너무도 신났습니다. 아빠는 분명 말을 할 힘도 없어 보이는데, 딸은 아빠의 품에서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너무 행복해 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가장 큰 축복은 제주도에 간 것도 아니요, 성산일출봉에 오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진짜 축복은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산일출봉이 높은 것이 문제일 것도 없고, 목마른 것이 문제일 것도 없고, 밥 먹을 걱정도 할 것이 없습니다. 무서운 마음이 들 때도 이 아이가 할 것은 걱정이 아니라, 아빠를 꼭 붙잡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품에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에 대한 은혜를 깨달은 A.B. 심슨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 길로 가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 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옛날 선지 에녹같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려올라 갈 때까지 주와 같이 걷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찬송가 430장).
수련회 때 한 학생이 간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받으려고 노력할 필요 없어. 관심 받고 싶어 몸부릴 칠 필요 없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너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란다.' ...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나 같은 더러운 존재를 사랑하시고 내 마음에 오신 것이 은혜입니다. 무언가를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받아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여도, 주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말씀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 더욱 사랑하고 신뢰합니다.'(고1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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