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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 신학

예림의집 2018. 4. 20. 16:28

신정통주의 신학


이 글에서는 성경이 아니라 성서라고 말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왜 성서라는 말을 썼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로 꼽힙니다. 그는 20세기 신학계를 주도한 신정통주의 신학의 창시자요, 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입니다. 그의 신학은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도 폭 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바르트는 19세기 신학의 방법론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종교적 의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에 대한 맹렬한 공격과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중심에 대한 강조가 바르트 신학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자유주의자였던 바르트가 어떻게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하고 도리어 공격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을까요? 바르트가 자유주의와 결별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1차 세계 대전과 자펜빌에서의 목회였습니다. 

바르트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서명한 「지성인의 선언」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으로는 청중들의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19년에 출판된 「로마서 주석」은 성경에 대한 재발견의 결실이었습니다. 「로마서 주석」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은 충격을 신학계에 주었습니다. 

바르트 신학의 중심은 세 가지 강조점에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재한다, 하나님의 말씀 이외 어떤 다른 토대 위에 신학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세가지입니다. 바르트의 가장 큰 공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던 신학의 흐름에 반기를 들고 이를 차단하려 한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신학의 중심으로 삼은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학자들을 비판하고 정죄했지만, 바르트는 그것과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9세기 신학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 비평적 성서 연구 방법을 수용하여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 것이라든지 보편구원론적인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비판받고 있습니다. 

   

바르트와 에밀 브룬너”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표자들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우정과 갈등의 관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분쇄하고 종교 개혁 신앙에 기초한 정통주의 신학을 재정립하는데 뜻을 같이한 동료요 동지였으나, 자연 신학에 대한 견해 차이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우정의 토대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갈라놓은 견해 차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일반 계시와 자연 신학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바르트는 이를 부정했고 브룬너는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에서 바르트는 자연 신학을 부정하고 브룬너는 인정하게 되었을까요? 브룬너는 은총과 자연을 불연속성의 관계가 아닌 연속성의 관계에서 이해했습니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브룬너의 주장은 하나님의 일반 계시가 있다는 것과 자연 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한편 바르트는 자연 신학을 ‘신학적이라고 주장하는 하나의 체계 형성’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자연 신학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 방법은 성경의 설명과 전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 신학은 진정한 신학의 범위 안에서 별개의 주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바르트의 자연 신학 거부는 그것을 별개의 문제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934년부터 시작된 바르트와 브룬너의 자연 신학 논쟁은 근 2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바르트는 브룬너의 입장을 토마스주의적이며 신개신교주의적이라고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반대로 브룬너는 바르트의 입장이 비성서적이며 비종교 개혁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양자 사이의 완전한 화해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루돌프 불트만”은 당대 제일의 신약 성서 학자로서 현대 신학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그덴에 따르면, 불트만의 공헌은 어떤 기준에 의해 판단되든지간에 과소 평가될 수 없으며, 그의 신학은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불트만이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신학적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현대인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전달되어야 하는가였습니다. 

불트만은 두 가지 접근 방법을 통해 이 과제를 수행하고자 했습니다. 신약성서의 비신화화와 실존론적 분석이 그것입니다. 비신화화는 '세기의 신화적 세계상과의 관계에서 신약 성서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이 세계상이 신약 성서에 표현된 실존에 대한 이해에 얼마나 불필요한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신화적 표현이나 사고로 둘러 싸여 있는 복음의 진리를 그것으로부터 벗겨 내는 것입니다. 한편 실존론적 분석은 1세기의 개념, 언어, 의미들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고 인간 실존의 현실 상황에 일치하는 용어들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불트만이 신화를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실존적 해석입니다. 불트만은 신약 성서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행위에 관한 메시지를 새로운 세대에 전하는 것에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신약 성서에 대한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대한 분석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신약 성서가 그리스도의 사건을 신화적인 언어로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불트만은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신화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불트만은 성서의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신화로 취급하고 그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신약 성서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성서 저자들이 예수의 생애와 구전에 대한 전승과 고대 근동의 종교들로부터 유래한 자료들을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가 지니고 있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폴 틸리히”는 독일 태생의 미국 신학자요, 철학자로, 위대한 현대 기독교 사상가 중 한 명입니다. 그를 빼놓고 현대 미국 신학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그는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신학자입니다. 틸리히의 신학은 경계선상의 신학, 철학적 신학, 문화의 신학으로 특징됩니다. 그는 자신을 독일과 미국, 철학과 신학,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등 다양한 영역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중재하여 종합하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틸리히는 라인홀드 니버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사상의 많은 부분이 루터 신학에 의존하고 있고, 변증법적 신학의 초기에 틸리히가 바르트의 협력자로 자신을 간주했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입장은 변증법적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중간입니다. 

전자는 신과 세계의 분리를 주장하고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신과 세계의 종합을 주장하고 신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틸리히는 양자의 충돌을 극복하는 중재와 화해 그리고 종합이라는 제3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곧 철학적 신학입니다. 틸리히는 학파를 창설하지 않았으나, 현대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현대 인간 이해에 크나큰 공헌을 남긴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미국이 낳은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 윤리학자 및 정치 사상가로 전세계에 폭 넓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니버는 자신이 신학자라는 것을 자주 부정했으며 실제로 조직 신학서를 쓰지도, 기독교의 세부적인 교리에 관심을 표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자유주의 신학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그것을 배격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적 인간 이해에 기초한 사회 복음 신학의 결점을 발견하고 성서적인 인간관에 기초하여 사회 윤리와 정치 윤리를 제시했습니다. 그의 주요한 신학적 공헌은 인간에 대한 해명에 있으며 그의 관심사 또한 인간이었습니다. 

니버는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주의적인 인간관과 정통주의 신학의 비관주의적 인간론 논쟁을 통해 기독교 현실주의적 인간관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자 죄인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면만 강조하고 죄인이라는 면을 소홀히 했습니다. 니버는 인간의 두 측면, 즉 하나님의 형상과 죄인, 또는 자유와 유한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 특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