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역사신학

예수와 사도들의 시대

예림의집 2018. 4. 17. 10:30

예수와 사도들의 시대

예수님과 교회/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타인/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의 메시지/ 마지막 주간/ 새 언약/ 그의 재판과 죽음


왕을 처형하라

기독교는 신의 수치를 중심 사건으로 삼는 유일한 종교

예수님의 명패; INRI: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예수님과 교회: 예수님은 교회의 설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어떻게 교회의 특별한 성격을 결정하였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계속 수행할 제자들을 세워 2년 이상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가르치시고 용서와 사랑으로 한데 묶는 새 언약을 처음으로 소개하셨다. 규칙이나 직원들, 예식과 신조는 없으나 특별하게 구별된 공동체를 만드셨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교회를 창설하셨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타인: 

지역 차, 종교, 정치에 의해 분열됨. 예루살렘에서는 제사가, 세바스테에서는 로마신 쥬피터에게 제사가 드려짐. 외국인 통치자 경멸, 이교 문화에 반발했으나 저항 방법은 다름.

메시야 사상-기름 부은 통치자가 사탄과의 전쟁을 통해 부패한 세상을 종식시키고 낙원을 이룩하실 것을 믿음.(단7:13-22)

바리새파- 전통, 관습 강조. '구별된 자들'의 이미. 경건과 애국심은 존경의 대상.

사두개파- 예루살렘의 제사장 귀족, 보수적 정치집단, 로마통치를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기             회로 이용. 산헤드린 장악.

열심당(zealots)-무장봉기 통해 로마 전복 기도. 게릴라 집단 은신.

에세네파- 유대 광야 은신, 수도원적 공동체, 경전 공부, 왕국 준비.


예수님의 사역

요한의 사역을 이어 사역하심. 마을에 주재하는 랍비가 없었으므로 방랑하는 랍비들에게 의식을 부탁했던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 것이다. 교훈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그 나라가 현존함과 역사를 간섭하심을 가르치셨고 그 증거로 병을 고치셨다.  바리새인들에게 시기 당함.


예수님의 메시지

바리새인들의 경건이 수백 개의 율법을 지키는 데 기초했다면 예수님의 경건은 자기 의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는 것이었다. 세상 왕국의 지도자들이 다른 이들을 짓밟고 군림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봉사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오해의 가능성 때문에 메시야이심을 알리기를 꺼려하셨다. 


마지막 주간

예수님은 유월절 전 주간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셧다. 공개적으로 메시야와 동일시한 사건이었다. 또한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 메시야의 출현과 함께 성전 파괴가 이뤄질 것이라는 소식은 사두개인들을 긴장시키고 예수님에 대한 공동의 적개심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하나로 묶이게 했다.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은 숙련된 기술자 넉달 임금에 해당하는 은전 삼십 량에 팔리게 되었다. 


새 언약

유월절에 빵과 포도주로 새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것은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것이었다. 이제 그가 피를 흘리심으로 죄 용서를 누릴 새 백성의 존재가 가능해졌다는 말씀이었다.


그의 재판과 죽음

빌라도는 예수님이 로마에 반역한 것으로 밝혀질까봐 자신의 지위를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다.


헌 포도주 부대와 새 부대

예수님 처형 후 유대인 공회는 8년간 시달렸으나 그 운동을 금할 수 없었다.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것은 모세의 율법을 부인하고 성전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성전을 통하지 않고도 예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기독교와 유대교

하나님 나라를 전하던 예수가 어떻게 만민의 구주가 될 수 있는가? 스데반과의 충돌에 관건이 있는데 바로 구약의 해석에 관건이 있다. 유대교의 두 조직 율법과 성전은 임시적이며 이 모두는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오순절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것이 구약 약속의 성취임을 확신하고 전하였다. 그 자리에서 3천명이 이 사실을 받아들였으며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성령의 능력 주시는 역사를 기독교의 근본 사건으로 주장해왔고 드디어 헌 유대교의 가죽부대가 찢어지게 되었다.


최초의 공동체

집단 모두가 유대인 이어서 여전히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유대교의 법규와 예식을 계속지켰으므로 산헤드린은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지만 유화책을 써서 풀어 주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실재성을 의미하는 예식을 통해 통일성을 꾀하였다. 그것은 이미 선포된 왕국 안으로 들어감을 표시하는 세례와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을 통해 동일성을 유지함.


헬라파들

유대 지방에 퍼진 가르침은 유대 정착을 바라는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도 전해지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집사를 세움, A.D. 36년 스데반으로 인한 핍박으로 선교 운동이 일어나고 타지로 뻗어나가게 되고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의미: 기름 부음 받은 자들에의 헌신자들) 이름 얻음.


사도 바울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스데반이 옳음을 깨달았다. 율법은 임시적으로 주어져 하나님의 뜻을 이룰 능력이 우리에게 없음을 가르치고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포용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울은 유대, 헬라, 로마의 세 세계에 걸친 인물로서 로마 시민권(자유로운 여행, 보호, 상류층과 접촉)을 가지고 있어 전도에 적격이었다. 주로 하층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자들에게도 전하였다.


예루살렘의 멸망

유대교와 기독교 양자의 미래를 결정했던 것은 예루살렘이었다. A.D. 62년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순교가 있었고 64년 성전 공사가 끝나자 일자리를 잃은 수천 명의 유대인들은 불만이 고조되고 66년 황제 제사를 거부하는 반란을 일으키고 4년 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은 함락되고 회당들도 소탕되었다.  반란의 시초에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성을 떠나라는 계시를 받았고 이로 인해 반역자로 몰리고 몇 년 후 유대인들은 기독교 신자들의 회당 출입을 금지시킴으로써 분열은 종결되었다.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은 사도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