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병
흔히 '나태'라고 하면,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을 입은 채 빈둥거리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혹은 설거지 거리를 싱크대에 내팽개쳐 두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종일 텔레비전만 보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연상합니다. 나태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sloth'인데, 이것은 중남미에 주로 서식하는 나무늘보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무늘보는 나무에 거꾸로 메달려 꼼짝도 하지 않고, 최소한만 움직이며 사는 동물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나태라 하면 '몸이 굼뜨고 행동이 느린 모습'을 연상하고, 그 정의를 '좀처럼 움직이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죄로 규정해 온 나태는 이와는 성격이 무척 다릅니다. 이 전통은 나태를 단순히 몸이 느슨하고 느린 상태가 아니라, 영혼이 병든 것처럼 의욕과 홀력을 잃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빠진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교회 전통에서 주요하게 취급해 온 악덕으로서의 나태는 본래 사막 수도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4세기 사막 수도사였던 에바그리우스는 생각 외로 나태가 수도 행활을 망치는 최고의 악덕임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집트 사막에 들어간 그는 은둔수도사들의 상당수가 나태에 빠져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열악한 환경과 오랜 금욕 훈련 등으로 지치고 건강 상태가 나빠진 운둔수도사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의기소침해지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기대만큼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앎이 깊어지지 않자, 수도사들은 우울과 낙심에 빠져 금욕과 수도 생활에 의욕을 잃고 수도하는 자리를 슬슬 벗어나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에바그리우스는 바로 이것을 '나태'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제자 카시아누스는 이것을 수도사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형혼의 병'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태의 이런 성격은 어원을 통해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나태를 듯하는 나틴어 '아케디아(acedia)' 혹은 '아키디에(accidie)'는 헬라어 '아케디아(akedia)에서 왔는데, 이는 '관심(kedos) 없음(a-)'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태는 겉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보다 깊은 내적 태도와 관련 있습니다. 카시아누스는 사막이나 은둔지에서 수도하는 수도사들이 이 나태의 유혹에 넘어가면 하나님에 대한 몰입이 무너지므로 이것이야말로 수도사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나태는 의욕이 없어서 무기력해지고 어떤 일에도 감정이 동하지 않아 마침내 손을 놓고 아무것도 행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세이어즈는 나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알려고 추구하지 않고, 간섭하지도 않고, 즐기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위해서 살아야 할 그 무엇도 없도, 또 죽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에 그저 살아 있는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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