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분야에서도...
마자막으로, 교육 분야에도 참다운 대화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두 가지 교육관이 치역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중시하는 '전달'식 교육관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이 주변에서 관심 분야를 잘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유도'식 교육관입니다. 전달식 교육관은 커리큘럼의 내용을 강조하지만, 유도식 교육관은 학생 자신의 뜻과 배움의 자유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두 교육관 모두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달식 교육관은 학생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유도식 교육관은 배움에 필요한 규율과 훈련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공동적으로는 모든 교육의 기초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학생은 주변 세계를 자유롭게 관찰하고 탐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교사로부터 기본적인 지식 교육도 충분히 받아야 합니다. 교사 역시 주변 세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학생의 창의력을 믿어주는 너그러운 품성을 지녀야 합니다. 교사는 늘 두 가지 유혹에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는 학생의 배움에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주입하련는 것인데, 이 때 학생은 교사에게 순종하거나 아니면 반항하게 됩니다. 또 다른 유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어떤 교사는 지적인 훈련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해버리는가 하면 또 어떤 교사는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갖는 중요성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적 훈련'과 '학생-교사 관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에서 지식을 얻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적인 관계에서 지식을 분리한 채 추상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이 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론적인 지식을 습득한 교사와 경험으로 지식을 습득한 학생이 서로 만나서 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리를 온전히 깨닫는 '대화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일상의 여러 관계 속에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처럼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소통이 일어나야 하는데, 사실 소통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유리는 이제 그 이유를 찾아볼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소통을 방해사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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