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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4)

예림의집 2017. 7. 10. 08:47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4)


우리의 편집자 친구가 사람들은 애통과 슬픔을 피하기 위하여 그들의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올았습니다. 결국 세상에는 이미 비참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누구든지 애통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 말이 흥미를 끄는 걸까요? 그 편집자(대부분 우리들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전 가족이 폭풍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니 당신은 정말로 마음껏 축배를 들 수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절친한 친구가 죽거나 중대한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슬퍼하며 또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걸까요? 그는 영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오인에게는 영적인 면에서 애통하는 것이 당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관하여 정말로 염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번째 복은 첫 번째 복에서 자연히 흘러나옵니다. 우리가 심령이 가난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거룩함을 깨닫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무력하다는 것도 반드시 인정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우리의 죄, 즉 우리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슬퍼하고 뉘우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슬퍼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요? 왜냐하면 그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는 것은 회개하는 것인데, 이 말은 오늘날 많이 사용되지 않는 순수한 성경 용어입니다. 그것이 너무 구식이며 종교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 죄송합니다"라고 내팽개치듯 말하고 더욱 즐거운 일들을 생각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것은 슬퍼하는 것이며 정말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회개하는 것은 즐겁지 않습니다. 상한심령, 통회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할 때 그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며 우리를 위로해 주시며 우리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것을 광고 문안 편집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죄 때문에 슬퍼하는 그리스도인이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을 때 그는 복이 있나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