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행복 광고
예수님께서는 행복하게 되는 방법에 관하여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오늘날 광고나 판매나 정치에서 성공하려고 하셨다면 그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가 서울에 있는 큰 광고 회사의 광고 문안 작성자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즐거운 삶을 사는 것"에 관한 몇 개의 문안을 다으모가 같이 제출합니다. 그려면 현실적인 광고 문안 편집자인 그의 사장은 그에 대해 응답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니? 잠깐만, 예수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겁니까? 모든 사람들은 일등을 하는 방법-협박을 통해 승리하는 법, 자기를 내세우는 방법, 성공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누구도 고용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은 다음과 같이 바꾸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자신이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항상 어떤 것이든지 다룰 수 있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잇느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자 예수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읍니다. 애통하는 자는 게으름뱅이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공동 묘지를 '기념 공원'이라고 부르는 이유이지요. 우리는 애통하는 것을 잊어야하며 죽음이 일어났다는 것을 부인해야만 합니다. '좋은 시절을 기억하고 적극적인 생각을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글쎄요, 온유하고 상냥한 것이 여성들에게는 좋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것이 실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성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강인해야만 합니다. 그 말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거싱 더 좋겠습니다. '대담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에수 당신은 속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의는 워터게이트사건과 히틀러의 가스실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세상은 극도로 이기적입니다. 당신은 기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노획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밀림에서는 '약삭바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앞설 것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글쎄요, 나는 그말이 매우 좋아 보인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 당신은 주의해야만 합니다. 일단 당신이 난처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제거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결국 만약 그도 할 수 있다면 당신에게 똑같이 행할 것입니다. 자유 기업은 긍휼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거싱 아니라 그것은 끈기와 노력과 성공하려는 의지를 바탕으로 세워집니다. 오늘날의 모든 사람은 감상적인 이야깃 거리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완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처신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예수,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죄인인 우리 모두를 회개시키기 위해 왔다고 당신 자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당신이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사람들을 믿는다면 어떠헥 되겟습니까? 케네디나 링컨이나 시저나 세종대왕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이 유다를 믿은 것은 잘 한 것이 아니었죠. 그렇죠?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는 거의 실망하지 않을 것임이요'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입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에수, 재미있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살마들이빈다. 누구도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는 평화보다 더 낫읍니다. 왜냐하며 그 대가가 너무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기 주장을 고집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는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현실적인 광고 문안 편집자는 인생 행로에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정말로 깨닫고 있을까요? 우리는 팔복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간략한 말씀-최고의 행복에 관한 묘사-을 다시 살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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