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문서설의 발달 과정과 그 내용을 전개하고 신학적인 문제점을 서술하라.

예림의집 2016. 12. 29. 14:04

문서설의 발달 과정과 그 내용을 전개하고 신학적인 문제점을 서술하라.


문서설이란 오경이 복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문서들로부터 편집되었다는 가설로서 기존 문서들을 사용해서 편집했다는 뜻에서 편집문서설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가설은 모세 저작론을 부정할 뿐 아니라 성경의 영감론까지 부정하게 된다. 문서설은 초기문서설-->단편문서설-->보충설-->결정설-->수정 문서설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장되었다.

초기 문서설은 아스트룩, 아이히호른, 일겐으로 이어졌다. 아스트룩은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 2개의 기존 문서들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하나님 이름을 여호와로 일컸는 J문서, 엘로힘으로 일컫는 E문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1534절 가운데 769절을 E문서, 630절은 J문서로 분류했다. 그러나 그는 문서의 사용은 창세기에 국한된다고 했다. 이스트룩을 계승한 아이히호른은 출애굽기 초까지 문서 분해 작업을 시도하여 800절을 E문서, 650절을 J문서로 구분했는데, 1823년에는 모세 저작권을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을 계승한 일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세기를 17개의 문서에서 유래된 것으로 구분했으며, E문서를 다시 둘로 구분하여 J, P, E 문서로 분류했다. 즉 일겐은 저자를 J문서 저자, 제1E문서(P문서)의 저자, 제2E문서의 저자의 3인으로 구분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신부였던 게데스의 의해 주장된 단편문서설은 오경이 30개의 단편문서들로 구성되었으며, 이 문서들은 대부분 솔로몬 시대에 작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30개의 문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는 다윗 시대의 작품이며, 신명기는 요시아 시대의 작품이며,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편집자는 동일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문장 표현상에 단일성이 결여되고 어체가 조화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오경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B.C. 580년이라고 하여 오경의 저작 시기를 매우 후기로 끌어 내렸다.

에와르드와 블릭에 의해 주장된 보충설은 기본 문서인 E문서에 J문서가 보충되었다는 가설로서, 문서를 2개만 인정하고 그것이 동시대가 아니라 훗날에 보충되었다는 가설로서, 문서를 2개만 인정하고 그것이 동시대가 아니라 훗날에 보충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단편설과 다르다. 즉 오경은 E문서 저자가 E문서를 기본 문서로 작성한 것이었으나, 여기서 J문서의 저자가 J문서의 내용을 보충한 것이라는 가설이다. 따라서 보충설은 J문서에 E문서가 나타나는 것을 설명할 수 있으나, 반대로 E문서에 J문서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것은 고대로부터 E문서와 J문서가 구분이 없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보충설을 수정 보완한 결정설을 발터의 견해로서 오경은 본래 단일한 근본 문서에 의해 작성되었으나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 많은 저자들이 기사들을 첨부함으로써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문서설은 후펠트에 위해 종합, 수정되었다. 그의 수정문서설에 의하면 J문서는 E문서에 보충된 추가 문서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독립 문서이다. 후펠트는 창세기 20장 이후의 E문서가 신명이 엘로힘일 뿐 내용은 J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창세기 19장까지의 E문서와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E문서를 E1, E2로 구분하고, 문서의 고대성은 J, E, P(E1)의 순서라고 했다. 그리고 신명기는 독립된 무서에 의해 작성되었는데, 그 근원 문서를 D문서라고 했다. 결국 수정문서설에 따르면 오경에 사용된 문서는 J, E1, E2, D의 네 종류가 된다.

이러한 문서설에 따르면 오경은 기존 문서의 편집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경의 영감이 부정된다. 나아가 그것은 성경의 유오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성경의 사실성 및 구속론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서 문서설은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부정함으로써, 모세 오경의 역사성과 그 중심 내용인 구속론을 부정하고 그것은 단지 신앙의 고취를 위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