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신약신학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활동시기

예림의집 2016. 11. 8. 16:46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활동시기 


세례 요한은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잉태되지는 않았지만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태어났다. 그는 아비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던 중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라고 계시를 받은 후 태어났다. 그는 태중에 있을 때에도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어미 엘리사벳을 만나러 왔을 때에 네 문안하는 소리를 듣고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 정도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는 사명이 막중하였던 자이다. 세례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지내며 메시야의 오심을 증거 했다.
이제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시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세례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는 지 열 다섯 해라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눅 3:12).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 다섯 해는 언제일까? 로마의 역사를 살펴보면 해결할 수 있는데 디베료 가이사가 로마를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주후 14년 8월 19일이고 열다섯 해 되는 해는 주후 28-29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주전 4년에 태어나셔서 주후 26년이 되는 해, 곧 예수님이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고 흔히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사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시작한 시점이 주후 28-29년이라면 그 이전인 주후 26년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는 누가복음 3:1-2에서 6개의 시기를 언급하며 세례 요한엑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시기를 정화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그중 본디오 빌라도의 유대통치(주후 26-36년), 헤롯 안디바스의 갈릴리 분봉왕 통치(주전 4-주후 39), 헤롯 빌립의 이루래, 드라고닛 통치(주전4-주후34년),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의 통치(주후 18-36년)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시기로 알려진 주후 26년을 지지하지만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15년과 안나스가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시기에 대한 언급은 문제가 된다. 안나스는 주후 6-15년까지 9년동안 대제사장직을 맡고 예수님 당시에도 사위인 가야바와 함께 실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를 언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디베료 황제의 통치시기에 대한 언급은 난제이다.
현재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시기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시기에 대한 이해는 주후 26년과 주후 28-29년으로 보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런데 공생애 출발시기 뿐 아니라 공생애 기간, 십자가를 지신 유월절 등 연대적으로 정확히 통일된 것은 없고 연구중이다.
또한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의 공생에 출발 시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내용은 없다. 다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나셨는데 두 사건을 오해하는 데에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에는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혔던 기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세례 요한은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진 자였다. 처음에는 맡은 바 사명을 감수하며 오실 이에 대해 증거하고, 회개하는 세례를 베풀며 많은 무리를 가르쳤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고 요한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위치를 잠시 망각한 것 같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하고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 이었던 헤롯 안디바스가 헤로디아를 취한 사건을 책망하다 옥에 같히게 된다.
헤롯 안디바스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을 뿐 그를 해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많아 소요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옥에 갇힌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옥에 갇힌 요한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눅 7:18-19). 아마도 옥에 갇힌 기간이 적지 않은 세월이었음을 짐작케 하는데 세례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께서는 활동 무대를 갈릴리로 옮기시고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세례 요한은 이 일들을 제자들을 통해 듣게 되는데 누가복음을 기준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갈릴리로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자리신 곳인 나사렛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하시고 본거지를 가버나움으로 옮기심(눅 4:31). 갈릴리 여러 회당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제자를 택하시고(눅 5:1-11), 문둥병자를 고치심(눅 5:12-15).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도하시고(눅 5:16), 침상채로 들고 온 문둥병자를 고치시고(눅 5:17-26), 세관에서 마태를 제자로 삼으심(눅 5:27-29). 안식일에 밀밭사이로 다니시는 장면(눅 6:1-5), 또 다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고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시며(눅 6:6-11),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눅 6:12), 평지에서 설교하심.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고치심(눅 7:11-16), 나인성으로 가셔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고(눅 7:11-16), 세례 요한이 보낸 요한의 제자들과 대화하신 후 설교하심(눅 7:17-35), 요한이 잡히신 후 예수님의 사역을 적어 보았는데 적지 않은 시일이 지난 것을 알 수 있다. 요한이 옥에 같힌 기간이 적지 않은 기간이라면 이 기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례 요한은 옥에 갇힌 지 얼마 후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라고 묻는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옥에 갇힌 후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옥에 갇힌 상황으로 구속받고, 힘든 자신의 처지와 자기를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상황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 사명이었음을 잊은 것 같다. 번민 가운데 드는 의심의 표현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였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바지께서 우리와 동행하심을 믿고 살아간다. 그런데 자신의 환경이 힘든 상황으로 바뀌었을 때 아마도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가 하고 의심하지는 않는가? 이제 장성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로서 주신 말씀을 깨닫고 기도로 간구하여 의심하지 않고 미천한 나를 불러 사명을 맞겨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성도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