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십자가로 본 비텐베르크 신학의 특징
1. 성경 언어들과 교부들을 중시함
그리스(헬라)어, 히브리어를 가지고 로마서를 강의함
암부르시우스, 터툴리안, 어거스틴의 책을 읽는 것
신의 도성(신국론), 고백록(참회록)
어거스틴 르레상스
2. 성경해석을 하는데 문법(Grammatik)을 중요시 했다.
변증법(정반합)에 의해 변질된 알레고리 방식을 주로 하던 시대에 반하여
문법적 해석을 취함(신학적, 역사적, 문법적).
학자마다 다르게 해석을 하면 문제가 있다. 학파적으로, 자의적으로 해석.
신비주의적 해석
3. 성경의 무조건적 권위를 인정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는 거짓 신학자이다.
*성경 영감론
종교개혁 이후 정통주의 시대에 생겨남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남
*역사 비평에 위험성.
근본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
설교 현장에서 써 먹기 힘들다.
신학적 해석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비평의 마지막은 회의주의다.
윤리, 도덕적으로 설교할 수밖에 없다.
4.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목양을 강조
양은 다른 어떤 것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목양이 될 수 있다.
성경을 붙잡고 가는 사람이 성공한다.
성경은 성경 자신의 해석자이다.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논쟁: 구원을 얻는 것은 성경이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지금은 역사를 모르고서는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역사학, 구약학)
기본적인 문법만 알고 성경을 공부하면 성경이 답을 준다(성경 번역의 중요성).
표준 새 번역의 문제(쉽게 한다는 것이 권위를 떨어뜨림)
현대인의 성경,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성경은 가능한 성경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우리 시대에 잘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
우리가 확고한 신념에 있으면서, 논증, 변증을 하기 위해서 철학, 수사학, 역사학 등이 필요하다.
Solo verbo dei “오직 성경으로”
5. 성경의 온전한 해석자로서의 성령에 대한 강조
루터, 칼빈도 성경을 부분적으로 해석했다.
오직 성령만이 완전히 성경을 해석한다.
루터, 칼빈 “우리는 거지다”
카톨릭은 교황이 성경을 최종적으로 해석한다는 반면 우리는 성령이 그러하다.
*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한다.
십자가만이 모든 거짓을 들어낸다.
특별한 이단종파들은 고난을 강조한다. 마치 십자가 신학을 사수하는 것처럼...
그러나, 결국은 우리 신자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치루어야할 댓가로써 십자가를 강조한다.
대속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일방적 선언이다.
과저, 현재, 미래의 죄를 지을 줄 알면서도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일방적인 선언을 하셨다.
이단은 구원의 조건으로 나의 십자가를, 현대신학은 대속적 십자가보다 해방의 십자가.
현대 신학자들은 인간을 낙관론으로 보고 원죄를 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속적 십자가가 없다.
모범설, 감화설(원죄를 믿지 않기 때문)
*Crux Probat omnia 십자가는 모든 것들을 시험한다.
교리와 교인을 시험해 볼 때.
그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그들의 표지가 무엇이냐?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인가?
십자가가 있는 곳에 체험이 따른다.
신비적 체험, 하나님과 동행과 교제의 체험.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반 은총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theologia Crosis(십자가의 신학)를 주장함
로마 카돌릭에 우주 만물을 통하여 들어나는 우주의 영광(영광의 신학 theologia Gloriae) 반대하여
예배당도 찬란하게 지음, 사제들도 찬란하게 높임
믿음 없는 사람들을 연주자로 세움. 영광스럽게 보이기만 하고, 만홀함이 넘침
우리는 말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신자도 두 종류. 영광의 신자와 십자가의 신자
교회의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
우리는 말씀의 칼을 갈아야 한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초창기에만 강조했다?
루터는 평생토록 십자가를 강조했다.
칭의와 십자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칭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원해서 십자가를 진다.
자기 힘으로 못 지기 때문에 의롭다 선언 하시는 칭의의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
십자가가 없다면 은혜 또한 없다.
십자가의 신학은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위로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세의 다른 곳과 차별
1. 신비주의 비판
수도원을 중심으로 해서 신비주의의 발흥, 잘못된 십자가 신학을 비판함
이 사람들의 고난은 면상(unio mystica) 속에서의 고난이다.
신과 영혼이 신비적으로 연합을 하면 카타르시스(katarsis)가 오고, 엑스타시(Ectasy)가 온다.
신과 영혼이 합체가 되어 일치가 된다.
정화에 도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사용한다.
영지주의 이원론의 영향. 영혼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위해 명상의 과정을 거친다.
실제 삶 속에서는 십자가가 없다. 실제 고난은 다 피함
2. 스콜라 신학을 비판
학교에서 생겨난 신학으로 일반 교양인들에게 변증하는 차원에서 생긴 것
합리적인 측면들만 이야기 하려고 하는 유혹을 받음
자유주의 신학(개명주의의 영향), 이성적인 성경해석. 원죄, 십자가.
십자가, 모욕, 멸시, 천대 등을 빼어버리고, 사랑과 도덕만 설파
의도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멀리함
십자가를 부끄러워 함.
영지주의(그노시스) 경향으로 감
3. 토마스 아켐버스(본받아 경건)을 비판함
공동생활 형제단.
형님 같은 우리 예수
4복음서를 많이 읽음
교회는 완전히 썩었다.
검소하게 살고, 초대교회처럼 살고, 십자가를 지고 살자
immitatio Christi 그리스도를 모방
대속의 십자가가 한 번도 언급이 안 됨.
핵심은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멀리하라.
4. 인문주의(에라스무스) 비판
1916 희랍어 원전을 편집함.
소박한 삶
예수 그리스도를 교리나 교권으로 보지 말고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려고 애썼던 사람으로 보자
인간 예수, 하나님의 아들(로고스 기독론)이 사라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빠져버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름을 알지 못함
십자가의 두 가지 의미: 본받아야 할 십자가와 대속의 십자가를 다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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