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실인 (민 6:1-8)
민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8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이 시간에 “우리는 나실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간혹 방송에 '나는 자연인이다.' 라고 외치는 사람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 외침은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공해환경과 사회적인 억압의 구조 속에서 벗어난 자유의 외침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외쳐야 할 말이 있습니다. (함께 따라서 하죠) "나는 나실인이다."
나실인이 무엇일까요? 나실인은 히브리어음 נָזִיר ‘나지르’로서 고대 히브리 사람들 중에서 신앙적으로 자기를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자 한 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삼가다' 또는 '스스로를 헌납하다'라는 뜻의 “나지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실인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 나실인에는 삼손이나 사무엘 같은 사람이 나실인입니다. 나실인은 예수님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고, 행 18장을 보면 바울도 전도의 목적이지만 나실인 서원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든 나실인의 서원대로만 산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온전히 함께 하셔서 가장 귀히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더불어 역사하시는 초자연적인 카리스마가 나타납니다. 지금 이 제도는 사라졌지만 신령한 의미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진정한 나실인이 될 수 있을까요?
1. 예수 안에서 영적 나실인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삿13:5에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했습니다.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인으로 예정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정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습니다. 렘1:4-5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셨습니다.
성경 곳곳에 그런 말씀이 많습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벧전2:9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정하셔서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한 나실인입니다. 그래서 聖(거룩) 徒(무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구별된 존재이며 예수 안에서 권능으로 쓰인바 된 사람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이 구별된 존재라는 나실인의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의미에 걸맞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세상의 즐거움이 아닌 하나님으로 즐거움을 삼아야 합니다.
민6:2-4에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철저히 포도나무의 소산을 피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의 소산은 무얼 의미할까요? 시4:7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 하나이다.” 한 말씀처럼 포도나 포도주는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뜻합니다. 인생의 기쁨이란 먹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그 자체가 죄란 말은 아닙니다. 거기서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즐거우면 얼마나 즐겁고 그것이 가치 있으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일까 시험해 보려고 온갖 즐거움을 다 취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전2:25에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되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인간의 제일 된 목적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실인을 통해 보여주신 진리는 세상적인 즐거움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자라나는 학생들이나 웃을까 누구 한 사람 웃지 않고 시무룩해가지고 다닙니다. 세상에 웃을 일이 없나 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좋은 일을 생각하며 웃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때문에 웃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로 항상 즐거워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나실인이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3.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5절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이와 같이 나실인은 머리털을 밀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내 위에 누가 계시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11:3에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그러면서 10절에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머리는 권세 아래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나실인이 삭도를 대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 복종을 의미합니다. 삼손의 놀라운 힘의 비결도 바로 머리를 깍지 않는데 있었습니다. 삼손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맨손으로 사자를 죽이고,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였으며, 가사성에서 겹겹이 포위되었을 때도 수많은 적군의 창칼을 무시하고 거대한 성문과 문틀까지 빼내어 짊어지고 산꼭대기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고용한 들릴라라는 미인계에 빠져서 그 비밀을 가르쳐 줌으로 머리를 깎이고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눈도 뽑히고 서커스단의 동물처럼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머리를 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머리가 자란 어느 날 다곤신당에 끌려가서 재주를 부릴 때 삼손은 인도자의 도움을 받아 신당의 기둥을 무너뜨려 그 때 죽은 사람이 이제까지 죽인 수효보다 더 많았다고 했습니다. 능력의 비밀이 머리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 복종해야지 그렇지 않고 세상의 사사로운 온갖 일에 관여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내가 먼저 나서서 활개치고 다니는 하나님의 지배를 벗어나는 자가 됩니다. 옳은 일을 한 것 같은데 능력은 점점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그것이 어렵습니다. 선이냐 악이냐 그 선악의 개념이 전부가 아닙니다. 비록 선일지라도 각인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 따라 사는 것이 신약의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관심하는 것에 나도 관심 갖고 하나님이 무관심한다면 나도 무관심해야 합니다. 전도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환경 주시는 것을 보면서 접근해야지 혼자 뛰어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은사에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어떤 일에 관여하든 말든 해야지 예수님보다 앞서 나서다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육감이 아니라 생명의 흐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도 자기 사명과 성령의 인도 따라서 해야지 다른 사람 따라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만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순리대로 해야지 거슬르면 고통이 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나도 일하고 하나님이 머물면 나도 머물러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4. 세상 죄에 물들지 않고 말씀과 성령으로 희게 씻어야 합니다.
6-8절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나실인은 짐승의 사체는 물론 가까운 부모나 형제자매일지라도 그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됩니다. 자기 곁에서 갑자기 죽어 도와야 할 상황이라도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됩니다. 병균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언가 귀한 진리를 예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딤전5:6에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악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사람 자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악한 사람과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철저히 심령을 씻어야 합니다. 깨끗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심령의 때가 묻을만한 곳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마음이 죄악으로 더럽혀졌을 때 씻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5:4-6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를 함락시킬 때 아간이 전쟁하다가 금과 은과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보고 그것을 몰래 감추었다가 그 다음 전쟁인 아이성 전쟁에서 큰 참패를 당합니다. 이처럼 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나만 아는 죄일지라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주의 피로 사셨으니 구별된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구약의 나실인처럼 세상 즐거움 버리고 하나님으로 즐거움 삼고,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절대 복종하며, 세상에 물들지 않고 엎드려 희게 씻어 사무엘과 삼손과 바울과 같이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시고 쓰시는 거룩하고 신령한 나실인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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