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 (마 1:21-25)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오늘 우리 함께 나눌 말씀은 “예수 이름”이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께 만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이름을 들라고 말한다면 무엇이라 대답하시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예수!!”, 예수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시기 전에 천사가 알려준 그 이름 “예수”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은 없습니다.
빌2:9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하면서 10절에서 “예수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예수 이름이 왜 그토록 귀한 것일까요?
1. 예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그란 예수님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마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 중심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러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행2:21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를 수도 믿을 수도 영접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 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대답한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하시면서 얼마나 귀한 복을 말씀하셨습니까?
구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건져주십니다. 시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했습니다. 부모의 이름을 불러도 부모는 능력이 없습니다. 자녀의 이름을 불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이름만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늘 그 복된 예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2. 예수의 이름은 응답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요14:13-14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분명히 “내 이름으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 없고 베드로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구하라고 했어요. 왕의 이름 대통령의 이름으로도 안 됩니다.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대영제국의 가장 강력했던 여왕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알버트 공과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화를 못 이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여왕은 남편에게 사과하려고 알버트 방으로 갔지만 문이 잠겨 노크를 했습니다. 안에서는 “누구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왕이요.” 그랬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여왕은 문을 쾅쾅 두드리며 “명령이요 문을 여시오.” 외쳤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빅토리아예요. 문 좀 열어주세요.” 그래도 문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왕은 자기 자존심을 버리고 목소리를 낮추면서 “누구긴요.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 빅토리아에요.” 하니 그제야 열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기도가 아무리 간절해도 내 이름 내 공로 혹은 타인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하십니다. 오직 예수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한 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은 무덤 앞에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11:41-4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이름의 기도가 이와 동일합니다.
3,000명의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의 이야기입니다. 죠지뮬러는 안개 때문에 도저히 배의 출항이 불가능하다는 선장의 말을 듣고 “선장님, 나는 57년 동안 나의 하나님을 알고 지내왔소. 그리고 지금까지 기도해서 하나님을 접견하지 못한 적은 없었소. 자 함께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하자 그 짙은 안개가 다 사라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 이름은 백지수표입니다. 그 수표에다 무엇이라 쓰든 통하는 백지수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맞는 가장 귀한 것들을 골라 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복된 이름을 날마다 불러 구하는 것마다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예수의 이름은 권세의 이름입니다.
막11:23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권세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행 3장에 나오는 이적 보세요. 행3:6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명령하고 그를 잡아 일으키니 앉은뱅이가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답답한 일 만나면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될 것입니다. 갈릴리바다가 바로 우리 마음이에요. 자신의 마음 가눌 길이 없을 때 잔잔하라 명령하세요. 타인을 향해 마음으로 명령해도 되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질병도 마귀도 환경도 물러갑니다. 예수 이름이 특별하지 누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될 거다 안 될 거다 미리 계산하지 말고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명령하세요.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이름으로 명령한 그 결과였습니다.
막 9장에서 예수님은 비참하게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기 전에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오늘의 세대는 어떻습니까? 정상이라고 보십니까? 얼마 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에서 동성애자 애니스 파커 시장이 지역 목사들에게 동성애를 반대한 설교자를 색출하기 위해 설교문을 제출할 것을 요구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이런 세계화의 추세에 맞추어 온갖 악법들이 인권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장차 그들을 계도하는 자들이 도리어 잡혀 들어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반대할 뿐 아니라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사탄이 장난하지 않도록 늘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4. 예수의 이름은 상급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하면 하늘의 상급을 주십니다. 마19:29에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충성해야지 자기 이름으로 충성하면 내가 영광을 다 받아버리니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지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면 상도 없고 시험만 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6:1)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골3:17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도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벧전4:11) 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볼 때도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잘 관리하게 해달라고 관리자의 입장에서 구하면 상이 되지만 단지 건강하겠다는 욕심만 있다면 상이 될 수 없습니다. 자녀교육 역시 내 자녀 교육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교육한다는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 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깎아먹습니다. 내가 사라져야 하늘의 상이 쌓입니다. 헌금도 꼭 발표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강단에서 발표하고 주보에까지 내고, 이래서 과연 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꼭 해야 한다면 한 가지만 하고 싶습니다.
기독교 선진국들을 보면 기부의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앤드루 카네기는 “부호들은 그들의 생전에 부를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30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존 록펠러는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여 죽을 때까지 요즘 돈으로 60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한 해 기부액은 무려 83억 달러였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170억 달러를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기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나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봉사의 능력이 다 예수 이름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지 않으면 하늘의 상이 없습니다. 고난을 받아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아야 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상천하의 가장 아름답고 귀한 예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통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이 신기한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예수 이름으로 충성하고 감사하고 봉사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고 가장 복된 은혜와 상급과 열매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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